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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07. 2020

이런 걸 임산부 배려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만의 일은 아니지만, 모두의 일도 아니었던

사건은 화창한 7월 중순 어느 여름날에 터졌다.


산후조리원을 예약하러 반차를 쓰고, 출장 중인 남편 대신 동생과 함께 나온 참이었다. 간만의 햇살을 만끽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정신없이 울려 확인해보니 조직 개편으로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동안의 잦은 조직 개편에도 내 업무는 전혀 변하지 않았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첨부된 파일을 열었다. 어라, 이름이 여기 왜 있지.


업무가 바뀐 사람들이 많지 않아 동료들이 메신저로 조심스레 내 안부를 살폈다.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힘든 시기를 버텨 이제야 성과가 나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업무가 바뀌다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금요일에 통보 후 다음주 월요일부터 당장 업무를 바꾸라는 식이었다. 사전면담도 없이 이렇게 급하게 통지가 된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무엇보다 왜 하필 '내가' 떠나야했는지 궁금했다.


다음날 파트장에게 업무 변경 사유를 물어보니 시차 핑계를 댔다. 임산부라 일찍 퇴근하니 유럽 담당을 하기 어려울 거 같아 '배려'했다는 거였다. 배려라고? 내가 느끼기에는 명백한 업무상 불이익이었다. 사전 면담이라는 필수 절차도 없이 통보하면서, 이걸 상대방이 배려로 느끼길 바라다니, 바라는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최소한 이런 배려가 필요하냐고 미리 물어보는 게 상식 아닌가. 쓰레기를 치워준답시고 집문서를 버려준 격이었다.


또 하나 실망스러웠던 것은, 당당하게 임신을 사유로 말하는 태도였다. 적어도, 여기서 임신을 언급하는 게 성차별이라는 건 알 줄 알았다. 그래서 설령 이유가 임신이더라도, 워낙 성차별 문제에 민감한 요즘이니 명목상으로라도 다른 이유를 말해줄 줄 알았다. 내 바람이 과했다.


임신이 변경 사유라면 부당하다고, 혹시라도 임신 후 업무상 차질이 있었냐고 묻자 파트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건 아니라 했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보니 맥이 탁 풀렸다. 야근을 못하는 인력을 빼고 싶어 나를 팀에서 뺀 것을 진짜 모를 줄 알았던 건지, '임산부를 위한 배려'였으니 내가 고마워할 줄 알았던 건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바보 취급해도 정도가 있지 싶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통보였기에 내가 담당하던 유럽 인력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유를 듣더니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는, 파트장에게 담당을 변경하지 말아달라고 요청도 해줄 정도였다. 직속 파트장보다도 나를 더 신임하고 내 역량을 인정해준 셈이다. 그간의 고생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싶으면서,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 아쉬워졌다.


나의 완고한 항의와 유럽 인력들의 요청에 파트장도 드디어 이게 '성차별'임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는 개별 면담을 하자면서 본인이 이 일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내 역량을 신임한다고 변명했다. 본인이 업무를 조정해보겠다며 큰소리도 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시 몰라 마지막까지 기대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업무가 바뀔 줄 모르고 미리 잡아둔 컨퍼런스 콜에서 예상치 못한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유럽 동료들은 진심으로 슬퍼해주었고, 파트장은 모든 순간을 지루해하다 마지막에 고생했다며 박수를 쳐줬다. 어서 떠나라는 채근 같이 들렸다.


그 날 집에 와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나는 임산부이자 동시에 직장인인데, 그들이 보기엔 그저 임산부일 뿐이고, 그리고 임산부에게는 이런 부당한 인사조치를 해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만 당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당하지도 않 일이었다. 명백한 성차별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비록 나는 이런 급작스런 통보를 받고 쫓겨났지만, 적어도 다음 임산부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인사팀을 찾아가 내가 겪은 부당함을 고발했다. 인사담당자는 고맙게도 부서장 면담을 진행하여 일처리 방식에 주의를 주었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최선이었다. 물론 이런다고 당장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는다면 이 부조리함이 되풀이 되는 데 일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침묵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내일의 임산부들이 어제의 나보다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오늘의 나부터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그게 바로 내가 회사에서 임산부로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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