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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13. 2020

임산부 말고는 모르는 임신의 현실

진정한 복불복의 세계, 임신

임신 전에 나름대로 여러 정보를 찾아봤다고 생각했다. 호르몬 변화로 산후 우울증이 올 수 있고, 배가 커지며 삭신이 쑤시고,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시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가며, 출산의 고통이 코에서 수박을 뽑는 것 같았다는 후기까지. 그렇지만 막상 임신을 하고 느낀 것은 내가 거의 아는 게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연애도, 회사도, 육아도, 심지어는 갈 일 없는 군대와 해외생활에 대해서도 간접 경험할 통로가 이토록 많은 요즘인데, 여전히 임신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이미지(욱하는 입덧과 불러오는 배) 말고 접하기가 어렵다. 태어난 생명만큼 임신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인데 어떻게 이렇게 무지하게 지낼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임산부가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임신은 알려고 해도 제대로 알기가 너무 어렵다.


첫 번 이유는 개인마다 임신의 경험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유전적 요인, 산모의 나이, 신체적 상황에 따라 발현되는 임신 증상이 조금씩 달라서, 심지어는 같은 여성도 첫째와 둘째의 임신 증상이 다른 경우가 흔하다. 가장 스릴 넘치는 점은, 내가 임신을 하기 전에는 어떤 증상을 겪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입덧부터 그렇다. 나는 다행히도 입덧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루 종일 멀미하는 기분에 시달리고, 밤마다 구역질을 하고, 두세 번쯤 토해봤으며, 물만 마셔도 체하긴 했지만, 낮 동안의 컨디션은 매우 좋은 편이었고, 냄새 때문에 괴롭다거나 못 먹는 음식도 없었.


반면 회사 동료들의 입덧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토한 적도 한 번 없이 입덧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나가는가 하면, 출근 중에 구역질을 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고, 먹지 않으면 토해서 계속 입덧 캔디를 달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둘째를 임신한 동료는 첫째 때와 또 다르다며 체념하듯 웃었다. 어디 입덧뿐이랴. 개인마다 몸무게가 급격히 늘어나는 구간도 다르고, 호르몬 변화로 인한 통증이나 감정 기복의 폭도 다르다. 임신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물론, 겪어본 사람도 타인의 임신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태아가 아닌 임산부를 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은 '일시적인 상태 이상'으로 여겨져 통증이 심한 경우에도 견디는 것 외에 별다른 '처방'이랄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출산을 하면 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라 질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관절 통증이 그중 하나다. 최근 골반이 아파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대부분의 산모가 겪는 증상이며, 출산을 준비하느라 몸이 바뀌기 때문이라는 설명만 들었을 뿐, 아무런 처방도 없었다. 내 통증은 아직까지는 경미한 수준이라 큰 상관은 없었지만, 문제는 중증 통증이어도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는 거다. 관절 통증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파스는 멘톨 성분이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사용 불가능하고, 이를 대체하는 의료품이 없어 온찜질 정도가 최선인 상황이란다. 그마저도 복부에 가까운 부위면 태아에 체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찜질을 오래 하는 것도 어렵다.


거의 모든 임산부가 겪는 골반 통증도 이 모양이니, 다른 자잘한 통증들은 말할 것도 없다.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는 산모의 건강과 삶의 질도 분명 중요할 텐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을 줄 몰랐다. (물론, 태아와 산모 건강에 매우 치명적인 중증 질병의 경우, 상태에 따른 치료방법이 모두 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죽을병이 아니니 몇 개월간 견디라는 건 좀 잔인하지 않은가?)

 

  연구에 따르면 임산부 대부분은 요통을 정상적인 임신 과정으로 수용하고 통증을 관리하기보다는 그냥 참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병원에서 정상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통증이 심할수록 정신적 건강장애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은 이를 산후풍 정도로 간과한다.
  임산부는 왜 통증이 있는 상태가 정상으로 간주되는 걸까.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임산부는 현대 의학이 버린 몸일까.
-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 우아영 지음


세 번째는, 임산부들에게조차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 가장 궁금했던 건 대체 무슨 음식을 먹을 수 없냐는 거였다. 인터넷과 맘 카페를 뒤졌지만 사람마다 말이 조금씩 달랐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확인을 받으려면 몇 주는 더 기다려야만 했다.


심지어는 막상 물어봐도 의사마다 판단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내 의사 선생님은 참치캔은 소량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회사 동료네 의사 선생님은 금지 항목으로 말씀하셨단다. 이러면 가끔 먹을 때도 매우 찜찜한 마음으로 먹게 된다. 대체 뭘 근거로 나는 먹을 수 있는지, 몸 상태가 받쳐줘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의사 선생님의 기준이 후한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실망스러웠던 건 산전검사 결과를 들을 때였다. 보건소 검사를 놓쳐 10만 원이나 주고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검사 결과지 한 장도 받지 못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니 추가로 복용하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뿐. 결과지를 달라고 하니 무슨 항목 수치가 궁금하냐는데, 뭘 검사했는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 분명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태아에게 문제가 없으니 더 이상 알 필요 없다는, 이런 요청을 처음 들어본다는 뉘앙스였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늘 모든 페이지를 정독하며 건강을 가늠해보는 나였기에, 이런 대처는 상상도 못 해 어버버하고 나와야만 했다. (추후 다시 문의해보니 수수료를 내고 결과지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검사비에 수수료도 그냥 포함해주고 기왕이면 하나하나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더 내 임신기간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주기적으로 몸 둘레를 재고, 위험요소를 미리 알아보고, 식단을 관리하고, 일기를 남기기로 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임산부들이 본인들의 몸과 마음에도 더 신경 써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사람들이 임산부에 대해 더 쉽게 접하기를, 그래서 임산부, 비임산부 할 거 없이 이 기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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