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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14. 2020

임신하면 잘 먹어야 한다지만

많이 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임신 초기에는 자주 체해서 많은 양을 먹지 못했는데, 중기가 시작되자 소화도 잘 되고 식욕도 폭발했다. 단순히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게 아니라, 정말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질 않았다. 아기가 크고 있나 보다 싶어 들어가는 대로 먹은 게 화근이었다.


결국 16주에서 20주까지 5주간 4킬로 가까이 불어나자 의사 선생님이 체중관리를 숙제로 내줬다. 한 달에 +2킬로 정도가 정상이라며, 이번 달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으니 다음 달까지 1킬로 내외로만 쪄야 한다고 했다. 권장 몸무게보다 더 찌고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막상 이런 진료 결과를 들으니 비정상으로 낙인이 찍히는 기분이었다.


이후에는 나름대로 샐러드와 현미밥으로 식단을 조절하고 산책도 꾸준히 했지만, 속하게도 계속 살이 쪘다. 진료 이후 2주간 2킬로가 더 늘었고, 이 기간 동안의 스트레스는 정말 엄청났다. 맘 카페를 뒤져보니 24주 차 엄마들은 보통 7킬로 내외로 찌고 있었고, 이 정도가 권장 몸무게이기도 했다. 나는 20주에 이미 8킬로를 넘었고, 23주에 +10킬로에 육박하고 있었는데. 살을 빼야 하는 건지, 빠지기는 하는 건지, 이미 맘대로 먹는 것도 아닌데 뭘 더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아득해졌다. 


사실 절대량보다도 늘어나는 속도가 더 무서웠다. 거의 7주째 주당 1킬로 가까이 찌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만삭일 때 대체 몇 킬로 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몸무게가 무거워지니 발목 등 온갖 관절이 삐걱거렸고, 실제로 몇 번 넘어지기도 했다. 산후에 생각보다 살이 잘 안 빠진다는 수많은 증언들도 스트레스를 더했다. 그렇지만 나를 가장 공포로 몰아넣었던 건 임신 중 급격한 체중 증가가 초래할 수 있는, 혹은 체중 증가를 동반한다는 질병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임신성 당뇨(줄여서 임당), 임신 중독증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무시무시했다.


임신성 당뇨병

경과: 임신 중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거대아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분만 중 산모의 합병증 및 신생아의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임신성 당뇨병이 있었던 여성의 상당수에서 분만 후 시간이 지나면 당뇨병이 발생한다. 따라서 임신성 당뇨병이 있었던 여성은 당뇨병 발생의 고위험군이며 당뇨병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당의 가장 끔찍한 부분은 산후에 당뇨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임신 중 식단 관리도 이미 끔찍한데 일평생 당뇨관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니 정말 피하고 싶었다.


임신중독증 (전자간증)

증상: 고혈압과 동반되어 소변에서 단백 성분이 나오거나 혈소판 감소, 간 기능 저하, 신 기능의 악화, 폐부종, 두통, 흐린 시야 등의 동반 증상이 생기면 전자간증 또는 자간전증이라 하며 이는 질병이 더 진행한 형태이다. 자간증이라는 것은 임신 중에 고혈압 성 질환을 원인으로 경련,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태반 및 태아로의 혈류 공급에 장애가 발생하여 태아의 성장 부전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태아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체중 증가는 임신성 고혈압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임신성 고혈압이 심화되면 임신 중독증이 발병할 수 있는데, 이는 전체 산모 사망 원인의 15%나 차지하고, 태아 돌연사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나 둘 다 산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기적인 관리가 요구되는 질병이었다. 아기를 뱃속에 품는 과정 자체가 이미 순탄치 않은데, 출산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니 문득 억울함이 밀려왔다. 멋진 신세계 같은 미래 소설을 보면 여성 말고 기계가 아이를 낳던데, 어서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남편과 번갈아가며 임신할 수 있었으면.


어찌 됐건 살이 그만 찌도록 하는 게 나와 아기 모두에게 이롭다는 결론이 났다. 방법은 음식 양을 대폭 줄이는 거뿐이었다. 저녁을 샐러드로, 아점은 한 끼로 줄이고 틈틈이 먹었던 간식도 줄였다. 저녁마다 나가던 산책도 한 시간씩 꾸준히 다녔다. 때마침 재택을 시작해서 식단을 구성하고 유지하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 얼마 전 임당 판정을 받았던 회사 동료가 내 식단을 보더니 본인 식단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주변 친구들은 나의 체중 걱정과 식단관리를 신기해했다. 결혼도 임신도 그중에서 내가 처음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아기가 크느라 그런 걸 거라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하지만 이대로 찌다간 애도 나도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기'란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23주 중반부터 끝없는 허기가 사라지면서 몸무게가 더디게 늘기 시작했다. 여전히 표준 몸무게 이상이고, 의사 선생님과 약속한 1킬로 내외는 초과한 지 오래였지만, 급격한 체중 증가가 멈췄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25주 차에 잔뜩 겁을 먹고 봤던 임당 결과도 좋았고, 혈압도 거의 그대로였다.


다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3주째 몸무게도 그대로다. 출산까지 해봐야 알겠지만, 나는 임신 중기에 유독 살이 찌는 타입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모든 임산부가 정해진 양만큼 정해진 기간에 살이 찌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물론, 무시무시한 질병들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식단도 운동도 꾸준히 할 거지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9개월 간의 임신이라는 마라톤을 조금은 느긋하게 즐겨보기로 했다. 이렇게 훅훅 쪄도 몸에 이상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혹여라도 주변에 몸무게 걱정하는 임산부가 있다면 내 이야기가 (임시적으로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결말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더 건강하게 지내겠노라 약속해본다.


아가야, 건강하게 만나자. 엄마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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