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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27. 2020

이 세상에 내 딸이 태어난다는 게 설레

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예전에도 읽었던 투병일기를 다시 보다가 엉엉 울었다.


전에 봤을 때는 눈물은커녕 아무 감흥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참아가며 끅끅 울었다. 투병 중에 가장 하고 싶은 건 독박 육아고, 아들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게 꿈이라던 그 엄마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흘렀다. 아직 애가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럴 수가 있지, 호르몬이 날 바보로 만들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것뿐이랴, 워낙 무덤덤한 성격이라 아이를 가졌다는 것에 별 생각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뱃속의 생명체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나 의심이 들 때면 한 번씩 배를 차주는 것도, 딸꾹질을 하는 것도, 가끔씩 보는 초음파에서 손가락이며 발가락, 입술을 꼬물거리는 것도 귀엽다. 그리고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게 사랑스러운 나 자신이 제일 낯설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를 키우고는 싶지만 낳기는 싫었다.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었, 몸을 그 제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결혼 생각도 없었을 때는 진지하게 미혼모 입양을 알아보기도 할 정도였다.


커리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출생률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정책이 나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임신을 사유로 퇴사를 권고받는 여성들이 많고, 워킹맘에게 관대하지 못한 회사가 대다수다. 그래도 커리어는 이을 수 있을 거 같은 회사에 입사한 덕에, 아이를 가지기로 합의하고 결혼하긴 했지만, 대놓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뿐이지 출산이 커리어상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결혼 후에도, 눈에 보일 듯 단단한 유리천장이 느껴질 때면 엄마가 되는 걸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실제로 임신 초기에는 쉴 새 없이 출렁이는 감정 기복을 다스리느라, 쉬어도 쉬어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느라, 업무 변경이라는 부당한 대접을 받느라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었다. 임신한 걸 후회하진 않았지만 두 번은 못할 짓이란 생각도 들었다. 임신 기간이 어서 끝나길 바랐지만,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출산과 육아라는 것이, 그래서 결국은 내 커리어가 일시 정지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 문득 억울해지곤 했다.


그래, 태동을 느끼고 아기가 사랑스럽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스스로가 너무 낯설었다. 알게 모르게 사회적 억압에 세뇌가 된 걸까? 아니면 어차피 낳아야 하니 나도 모르게 자기 합리화를 시작한 걸까. 모성애는 애를 낳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던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뭘까. 아니, 정말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나만은 안 이럴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이 생명체가 몇 달 뒤에 태어나 내 눈앞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세상에 다른 누구의 아기도 아닌 '내' 아기가 생긴다는 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갑자기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비논리적인 느낌이었다. 몸과 마음이 갑자기 회복되어서가 아니었다. 몸이 힘든 것과 완전히 별개로, 이 아이가 내 아이인 게 행복하고 기대되고 설렜다.


그럴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새삼스럽게, 그간 받아온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이 났다. 엄마는 육아 휴직은 커녕 출산휴가 2주도 겨우 짬을 내 쉴 수 있던 시절에, 아이를 4명이나 제왕절개로 낳은 직장인이었다. 심지어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워커홀릭이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였던지, 어렸을 때는 나중에 크면 엄마랑 같은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일도 잘하고 일 욕심도 많던 엄마에게, 주렁주렁 달린 4명의 아이들은 얼마나 짐이었을까. 그런데도 엄마는 늘 우리 덕에 행복하다고, 본인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우리 4명을 낳은 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준 건지는 그간 몰랐다.


곧 엄마가 되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 사랑이 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거 같다. 나는 착한 딸이라서, 성실한 딸이라서, 엄마 말을 잘 들어서 사랑받았던 게 아니라 그냥 '나'라서 사랑받았던 거였다. 아기를 가지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있다는 걸. 나는 참 오랜 세월 동안 그 사랑을 받아왔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랑을 베풀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원망스러운 순간도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사실은 아이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아이가 낳는 게 조금 덜 두렵다. 세간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는 될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는 말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엄마 정말 고맙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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