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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31. 2020

임신 초기의 나날들

12주 차까지는 시간이 참 안 갔다

임신 1분기, 흔히 임신 초기로 불리는 시기는 12주 차까지다. 임신 중기가 눈 깜짝할 새에 끝난 거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고 길게 느껴지는 기간이었다. 나중에 이것도 잊힐까 싶어 아직 기억날 때 적어보려고 한다.


5주 차,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알았다. 아기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고 태아도 초음파로 안 보이던 때라 애를 가졌다는 감흥은 사실 없었다. 언제든 유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정을 안 붙이려고 태명도 고민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임신 초기가 끝날 때까지 병원에 가기 전날이면 아기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선고를 받을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더랬다.


6주 차,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다.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겠다는 핑계로 일부러 따로 예약해서 간 병원에서였다. 심장소리를 들으니, 세포에 가깝기는 하지만 생명이긴 하구나 싶었다.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단축 근무를 신청했다. 업무 시간은 줄었지만 일은 줄지 않아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느라 늘 녹초였다. 출퇴근 시간이 바뀌어 셔틀버스는 못 타고 운전도 못하던 때라 왕복 2시간씩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약하지만 입덧이 시작되어 하루 종일 차멀미를 하는 기분에 시달렸고, 가능한 음식 향이 덜 나는 매운 음식을 한참 찾았다. 늘 의욕에 넘치던 나였는데, 만사가 귀찮고 피곤해져서 누워있기 일쑤였다. 호르몬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걸 알았음에도 이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7주 차, 점 같은 태아를 보고 뚜렷한 심장소리를 들었다. 태명 고민이 시작됐다. 집 베란다에서 바로 까치집이 보였는데, 우스갯소리로 저 까치가 아이를 물어다 준거 같다는 농담을 하던 터였다. 아기 태명을 까치로 지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친한 과장님이 나중에 까치 엄마로 불릴 일 있냐며 만류해서 결국 '설이(雪)'로 바꿨다. 겨울에 태어나는 아이니까 눈 설자를 따서 설이. 아이도 태어난다고 하니 운전을 하려고 운전연수를 들었는데, 선생님이 임신 사실을 알자 걱정된다며 운전을 한동안 안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결국 12주 차가 지날 때까지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8주 차, 임신 관련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국민 임신 책으로 유명한 노란 책을 읽는데, 입덧이 너무 없으면 유산이 된 거일 수도 있다고 했다. 마침 입덧이 줄었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두려움이 몰려왔다. 토요일에 예약이 잡혀있는데도 매일 병원에 가볼까 고민하는 밤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금요일 오후에 회사에서 갑자기 토했다. 점심에 정말 체할만한 음식은 먹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남편은 아이가 살아있다고 말해주나 보네, 해서 속 편한 소리 한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생사가 의심될 때면 여지없이 구역질이 났다. 아무래도 밀당은 못하는 나를 꼭 닮았나 보다 싶었고 속이 불편한데도 고마운 기분마저 들었다.


9주 차, 병원에서 젤리 곰을 봤고, 남편의 부산 5주 출장이 시작됐다. 임신 초기인 큰 딸이 걱정된다며 엄마가 동생을 우리 집으로 파견 보냈다. 둘째 없이는 못 지내는 둘째 고양이도 같이 왔다. 4시 반쯤 퇴근해서 5시 반 집 도착,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집 앞을 산책했던,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주말이면 동생이 집에 가고 남편이 와서 고양이와 지냈다.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아 매일 요리를 해 먹지는 못했고, 코로나가 조금 덜 심한 때라 외식을 자주 했다. 임신 사실을 모르던 친구가 내가 애를 가진 꿈을 꿨다며 연락이 와서 둘 다 깜짝 놀랐다. 아이가 보따리에 쌓여있었다는 데, 굳이 따지자면 딸 태몽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할머니가 꿔주신 태몽이 꽃이었대서 딸이 아닐까 하던 참이었다.


10주 차, 임신 초기가 끝나간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가 되어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냄새가 싫어 소고기를 자주 먹었고, 국물요리가 당겨 쌀국수도 매주 먹었다.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이 한창 제철인 데다 신 것이 먹고 싶었던 탓에 과일도 엄청 먹었다. 이렇게 낮에 멀쩡하다가도 밤에 구역질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입덧 때문에 살이 많이 찌지 않았는데도 배는 착실히 나와 예전에 입었던 바지들을 입기가 점점 불편해졌다. 옷장에 반팔 원피스가 점점 늘어갔다. 불러오는 배를 보며 애틋한 기분은 커녕 여자 배를 가르고 태어났던 에일리언의 명장면만 계속 생각났다. 태동까지 더해지면 더 생동감이 넘치겠다 싶었다. 좀 더 감상적인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이런 것만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 다웠다. 


11주 차, 입체 초음파를 봤다.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제법 인간의 형상이었다. 입체 초음파를 보니 아이 성별이 더 궁금해졌다. 각도법이니 뭐니 있었지만 담당의는 16주까지는 확실히 알기 어렵다며 단호하게 이야기했고 나도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목 뒤 투명대를 확인하고 기형아 검사를 위해 2번 피를 뽑는 방법을 선택했다. 뭔가 자세히 설명을 들었지만 잘 기억은 안 나고, 두 번 결과의 평균으로 기형아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고양이가 본가로 돌아가기 전에 사진으로만 보던 고양이를 보고 싶다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어쩌다 약속이 몰려 화수목토 내내 집들이를 했다. 우리 고양이를 다들 귀여워하는 걸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12주 차, 산후조리원을 예약했고, 바로 그날 업무 변경을 통보받았다. 단축근무가 끝나는, 12주 차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 종일 무슨 정신으로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동생한테 계속 하소연을 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자꾸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산후조리원 투어를 1시간씩 2곳을 돌고, 예약을 완료한 다음 기분을 풀어보려고 책을 사고 예쁜 카페에 갔다. 집에 오니 오랫동안 집에 혼자 있던 고양이가 애교를 부렸다. 잠깐잠깐 기쁘고 내내 처량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어쨌건, 이 날도 다 지나가더라.


업무 변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나만의 일은 아니지만, 모두의 일도 아니었던


12주 차의 마무리가 영 안 좋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즐거운 날들이었다.  하루 때문에 이 모든 시간을 나쁘게 기억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미세먼지 하나 없이 유독 화창했던 늦봄과 초여름, 내내 비가 내렸던 한여름 사이에서 나의 임신 초기가 무사히 끝났다. 엄마가 된다는 것도 여전히 실감이 안 났고 가끔씩은 내가 임산부인 사실도 잊어버리곤 했지만, 살아남아준 아기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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