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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Sep 07. 2020

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

#코로나 #태풍 이 지나간 제주에서



태풍이 지나가고



제5호 태풍 장미는 스리슬쩍 지나가 버렸고, 제8호 바비 때는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전날 사온 비상식량으로 집콕하는 바람에 모르고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제9호 마이삭이 일주일 뒤 바로 찾아왔다.


마이삭이 오기 전 서핑을 하기 위해 샵에 문의를 해봤지만, 코로나와 태풍으로 인해 영업 중지한다는 답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제주도내 코로나 확진자가 급등하면서 이러다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완전히 끊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너무 우울했다. 그러는 와중 마이삭이 왔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역시 전날 비상식량을 잔뜩 사놓고 간간히 뉴스로 현재 상황을 체크해가며,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며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정전이 됐다. 우리 집의 모든 전기가 끊겼고, 무서웠다.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뚫고 바람소리가 '우-웅'하고 무섭게 들어왔다. 동시에 핸드폰 통신이 끊겼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곧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우리 집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누구세요 하고 밖을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괜히 무서웠다.


잠이 들지 않을 것 같아 핸드폰으로 무익한 영상들을 계속 보며 새벽까지 퀭한 눈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아침이 찾아왔다. 그렇게 맞은 아침은 너무 우울하고 불안한 거다. 왜 밝은 날이 찾아오지 않는 걸까. 맑은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가방에 노트북과 다이어리를 챙겨 밖을 나섰다.


맑은 날이 찾아왔다!




눈이 부셨다.

그동안 집에서 문을 닫고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우울해하고 있던 나는 정말 바보였다.

밖을 나서도 어둡고 우울한 날들이 반겨줄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다.

맑은 날이 찾아왔다.










코로나 태풍 이런 위기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고 좌절하고만 있을 건가 멍청하게.

이 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살아남아서 뭔가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뭔가를 해내야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꽃이 피고 나무들 사이사이를 가득 채워주는 햇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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