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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n 30. 2020

제주에서 유기견을 만났다.

들개가 된 유기견과 사람



자전거를 타고 카페에 가는 길에 교차로 신호에 멈춰 선 차량에 매달리는 강아지를 봤다. 나를 본 그 아이는 내가 피할 새도 없이 달려들었다. 깜짝 놀라서 얼굴을 봤더니 파란 눈을 가진 예쁜 대형견이었다. 순간 너무 놀랐다. 대형견이 나를 덮친 적은 처음이었고 조금 무서웠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너무 순해 보여서 ‘너는 어디서 왔니’, ‘왜 혼자 있어’ 말을 걸며 쓰다듬었다. 신호를 건너는 나를 보고 해맑게 따라왔다. 내 앞과 옆에서 지그재그로 뛰면서 자기를 봐달라 어필하는 듯한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고 안쓰러웠다. 얼마 동안 여기서 사람들한테 이러고 있었을까.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나를 따라오는 아이를 확인하려 가끔씩 뒤돌아보며 3km를 달려 카페로 향했다.


파란 눈을 가진 애교 많은 착한 아이




유기견을 데려왔다


카페에 무사히 도착하고 카페 매니저님께 양해를 구해 물을 받아줬다.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한 컵을 다 비우고 여기저기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목줄을 맨 흔적이 있지만 없었다. 걸을 때 가끔 발을 절었다.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하고 쉴 새 없이 애교를 부렸다. 앉으면 앉았고 손을 달라면 손을 줬다.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봤다. 유기견보호센터에 가서 주인 혹은 입양할 사람을 못 찾으면 안락사가 된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데려갈 순 없었다.


결국 제주 콜센터에 전화를 했고 18시가 지나 연결이 안 된다는 음성을 들었다. 112와 119에 전화를 했고, 120에 전화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셔서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는 종료됐다. 얼마 뒤 제주 애니멀 119로 이관해 준다는 문자만 남기고 연락은 없었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동안 카페 행사로 온 분들 중 한 분이 임시 보호해줄 수 있다며 연락처를 주고 가셨고,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왔고 4km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집에 있던 개가 너무 사납게 공격을 해서 다시 데리고 나왔다. 밤 산책을 하는 동안 ‘아이가 그냥 가버리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어디 가서 누가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무작정 키울 수는 없잖아 집도 없으면서...’ 머리가 복잡 복잡했다. 옆집이 펜션이었는데 여행 온 듯한 분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고 이미 거기로 달려가 있는 아이를 보고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강아지 좋아하세요?”


그렇게 하룻밤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아이 가족을 찾아주기까지

     

혹시나 밤 사이에 아이가 가버리면 주인을 찾아갔겠거니 하려고 했다. 그렇게 꿈속에서 온갖 동물이 나오고 사건이 겹쳐졌고 괴로워하다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옆집에 찾아가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유기견보호센터 웹사이트 여러 곳에 글을 올리고 SNS로 임시 보호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멀리서 나를 보며 꼬리 흔드는 아가를 그냥 보고만 있으려니 맘이 너무 아팠다. 사료를 챙겨주고 물을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줬다. 그리고 다시 옆집으로 데려다주다 절뚝거림이 심해진 듯 보여 살펴보니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한참을 헤매고 다녔는지 발바닥이 까져있었다.


애교가 엄청 많았다


오후 4시쯤, 카페에서 봤던 분께 연락이 왔다. 당근 마켓을 통해 임시보호를 해줄 수 있고 입양까지도 하고 싶다는 분이 나타났다고. 가슴이 철렁했다. 기뻐해야 하는 거지만, 이 예쁜 아이를 어떻게 보내지?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이별할 생각에 슬프기도 했고 사실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인터넷상으로 개장사들이 활발히 활동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기견 전문 번식업자, 도살업자, 전문 사기분양업자 등... 겁이 조금 났다. 노트북을 열고 위탁할 수 있는 기관을 찾아봤다. 시, 구, 위탁보호소 등이 있는데 맡겨지고 공고 10일이 후 주인이 나타나거나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가 된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법적으로 보호소 입소한 후 공고 10일 후 임시보호나 입양할 수 있다.)


아무에게나 입양시키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내는 수밖에. '능력이 있었음 내가 데리고 있지'라고 친구에게 마지막 톡을 보내고 이별을 준비하고 9시에 헤어졌다. 고작 27시간을 함께 한 아이지만 사람의 관심을 계속 갈구하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뿐 아니라 옆 펜션의 여행객들, 임시 보호자분, 그리고 임시 보호자분께 데려가 주신 카페에서 만난 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는 새 가족을 찾게 됐다. 감사하게도 모든 분과 연락이 닿아 나는 아이를 보러 자주 가기로 했고 펜션 여행객들에게는 안부를 전해주기로 했다.





유기견과 들개, 결국 사람이 만든 거 아닌가


유기견 그리고 들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제주에 살다 보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을 많이 본다. 대개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었다. 일부는 사람을 무서워하며 도망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학대를 당했겠구나 어림짐작 하면서도 그냥 그런 성격의 아이겠지 하고 지나쳤다. 딱 그 정도였다. 나의 아이가 아닌 다른 개들에 대한 인식은.


이사를 가야 해서, 가족들이 반대해서, 말을 안 들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아닌 핑계로 반려동물을 쉽게 버린다. 그렇게 버려진 개들은 유기견이 됐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야생에서 사람들을 피해 지내면서 살아나는 법을 터득한 개가 들개가 된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반려견은 들개가 되어 사람들한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들개 민원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 포획틀을 두고 단지 내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떤다. 농가를 습격해 농장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심지어는 산책하는 도중에 들개들에 습격을 당해 반려견을 잃기도 한다.          


11년째 소형견과 함께 살고 있는 나로서는 TV에 반려동물이 나오거나 강아지 공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너무 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나라도 우리 아이한테 사랑을 줘야지 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현재 유통되는 품종이 380여 종에 이른다는 것도, 그중 대다수는 인위적인 품종개량을 통한 새롭게 탄생한 종이라는 것도, 강아지 공장이 아직도 성행한다는 것도...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다. 직면하기가 무서웠다.


정기 기부를 신청한 적이 있다. 입사하고 나서 회사일에 몰두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정기기부를 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 삼았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며. 비겁한 행동이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자동이체 해지를 했다. 연민의 감정으로 무뎌지기보다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마음이고 싶다. SNS에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유기동물보호소 자원봉사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바로 가입했다. 작게나마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개인이 모여 인식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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