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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May 15. 2020

결국은 사람 이야기

제주에서 히치하이킹, 두 번째 이야기.

우리는 모슬포항에서 송악산을 거쳐 산방산에 도착했다.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애써 외면하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다시 한번 기적처럼 스윽 우리를 낮은 속도로 지나쳐 멈춘 차 한 대. 세 번째 천사 분들은 엄마와 딸이었다. 산방산 근처에 거주 중이고 새로 분식집 하나를 오픈할 예정이라는 러시아에서 남편을 따라 이주해오신 분이었다. 우리는 꼭 가겠다고 또다시 기약 없는 약속을 했고 어느새 중문에 도착했다.


중문해수욕장 해녀의 집




힘이 되어 돌아오는


여름 서퍼들의 천국, 중문이다. 나도 여름에는 중문에서 살면서 매일 서핑을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바다를 잠깐 구경하다 나왔다. 여전히 깔깔거리며 웃는 우리들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은가 보다. 주차장에서 착즙주스를 파시는 아주머니도 이것저것 여쭤보시더니 너무 부럽다고 하시면서 주스를 손에 쥐어주셨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주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중문 관광단지에서 나가는 도로가에서 다시 히치하이킹 시도를 했다. 그렇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박스를 들고 있기를 오분 정도, 하얀색 렌터카 한 대가 스윽 멈춰 섰다. 목소리가 좋은 혼자 기약 없는 여행 오신 남자분이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그분은 중간에 경치가 좋아 보이는 곳에 차를 잠깐 세우고 같이 둘러보자고 했다. 사진도 찍고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나무를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서귀포시내 이중섭거리에 그분 덕분에 무사히 도착하게 됐다. 목적지로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하며 알게 된 사실, 본업은 뮤지컬 배우로 지금은 휴식기이고 그래서 제주도에 놀러 오셨다고 했다. 어제까지 어느 유명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때 묻은 사람들밖에 없어 실망해 다시 육지로 돌아갈 찰나에 우리를 만난 거다. 우리 덕분에 제주살이를 해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고 했다.


그 이후의 만남들.

이중섭 거리에서부터 남원 큰엉까지 가는 여정은 차가 잡히지 않아 길을 헤매는 여정이 이어졌지만 그런 빈약한 시련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 미국에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셔서 본인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태워주신 분, 그리고 큰엉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는 표선에 살고 있는 겁이 나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태워주신 아주머니 두 분. 이렇게 우리의 여정은 끝이 났다.






궁금했다, 그 마음이.


이런 만남이 거듭될수록 우리를 태워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 같은데 쟤네 뭐하는 애들일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보이네? 하는 마음이 있는 반면, 세상 무서워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궁금해서 잠시 차라도 세워볼까? 하는 마음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찬란했던,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이 그리워서일 수도 있고, 돈이 없어 차를 얻어 타려는 학생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이벤트를 끼워 넣고 싶었던 찰나에 우리를 발견하신 걸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를 만났던 모든 분들이 마음 따뜻한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겁고 가득 채워진 기분이었다. 우리를 태워주셨던 6대의 차와 9명의 천사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괜스레 아려옴과 동시에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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