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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May 02. 2020

진정한 '나'를 찾는 길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지금 나는 제주 어느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비록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안됐지만 육지에서 내려온,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 어느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아침 햇살에 자연스레 눈이 떠지고, 아침에는 유튜브 요가 채널을 틀어 수련을 한다. 요가로 한바탕 땀을 내고 나서, 시리얼과 식빵 그리고 얻어온 천혜향 파치로 만든 과일잼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각자의 리듬에 맞게 기상한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고 다 같이 아침 산책을 나가 고사리를 캔다. 초록 초록한 이파리들만 무성한 곳에서 아직 피지 않은 고사리를 발견하기는 나에게만 어려운 일인가 싶다.

친구들과 매 끼니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돼지 앞다리살과 야채 송송 썰어 넣은 카레, 감자 듬뿍 납작당면을 넣은 찜닭, 계란 풀어 심심하게 만든 만둣국, 새콤달콤 양념장에 열무김치를 곁들인 비빔국수. 정말 신기하게도 맛이 없는 날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요리사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괜한 죄책감에 부산스럽게 의미 없는 무언가를 항상 하고 있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 삶이 너무나 좋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저녁 먹고 친구들과 나선 산책길에서



사실 지금 즈음 나는 계획대로라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어야 했다.


한껏 치장을 하고 거울을 본다. 아, 이거 너무 과한 것 같아 하며 목걸이를 빼고 소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팔목에 팔찌는 그대로 둔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문밖을 나선다. 문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옆집의 항상 서글서글 웃는 퉁퉁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넨다. “Hola!” “Hola, Buenos dias!” 그렇게 동네 주민의 힘찬 인사를 받고 좋아진 기분으로 거리를 나선다. 설레는 마음이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있다. 어젯밤, 유학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국인 폭행사건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나에게 친절하지만, 가끔 이런 사례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도 커진다.

상상해보자면 위와 같은 일기를 쓰고 있을 줄 알았다. 스페인어도 잘 못하는 조그만 여자애가 낯선 도시에 정착한다고, 텃세도 견뎌내고 또 그만큼 좋은 친구들을 만들면서 밤마다 울기도 하고, 또 그만큼 위로도 받으면서 행복한 시련을 겪고 있을 줄 알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외형은 이미 타고난 게 있어 글렀으니 대신 나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키가 작고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약해 보인다고들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엔 일부러 강한 척을 했다. 손가락을 꺾는다던가 건들건들하는 걸음걸이와 같이 아저씨들의 행동을 따라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화려한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여성성을 뽐내면서도 똑부러진 여성에 대해 동경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장소에 가면 터프하게, 또 어떤 장소에 가면 조신하게 변했다. 청소년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 당시 나는 내 안에 있는 나보다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나를 더 모르겠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것들로 나를 치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불어나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아바타가 되어가고 있었다.




퇴사를 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내가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상대방이 행복해질 거야 하는 바보 같은 자기 합리화를 했다. 나는 그를 희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걸로 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그냥 정말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퇴사한다고 회사에 이야기했다가 두 번이나 잡혔다. 나는 역시나 거절을 하지 못했다. 나의 희생이 모두의 행복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던 거다. 스트레스를 한껏 담아가지고 와서 집에서 괜히 툴툴대는 나,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 퇴사하는 과정 속에서 같이 술 마셔주고 응원해주고 용기를 줬던 사랑하는 친구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절’을 못함으로써 생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 '나의 희생'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이었던 거다. 너무 불공평한 일인데 나를 포함한 일부의 사람들은 모를 거다. 착각 속에 빠져 살 거다 나도 그러했듯이.




이제 시작이야.


퇴사를 하고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계획했던 스페인 대신 제주로 내려오며 결심했다. 철저히 '혼자'를 견뎌내 보기로. 그 고독의 길의 끝엔 진정한 내가 서있을 거라고. 물론 계획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근데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함께 해내기도 했고, 그만큼 더 행복함을 느끼게 됐으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듯하다. '가슴 뛰는 일'을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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