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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Apr 24. 2020

제주 이야기

제주에서 히치하이킹 여행_첫 번째 이야기.


처음 계획할 때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은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가능할 거라 믿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니까!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떠나는 날까지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적었고, 몰래 사전 인터뷰 영상을 찍느라 힘을 다 써버렸다. 시작하는 날 아침까지도 영상을 찍을 카메라의 용량이 확보가 안됐고, 아침을 먹고 출발할 것인지도 결정을 하지 못했다.


우왕좌왕,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다.





히치하이킹의 맛을 보다


 

최종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돈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굶을 각오를 하고,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비상식량으로는 초코바, 에너지바를 챙겼다.


하모해변 계단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한 명은 엽서에 감사의 마음을 담고, 한 명은 삼각대를 설치해 영상을 찍고 또 다른 한 명은 폐 종이함에서 가져온 박스를 아무렇게나 찢어 검은색 유성매직으로 우리의 목적지를 쓰고 있다. '송악산' 그리고 ‘한 번만 태워주세요’. 또 다른 한 명은 구경을 했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쳐다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는 걸 포기한 듯이 웃어젖혔다. 꺄르르르륵. 이미 길에서 삼십 분을 넘게 소비해 버렸기에 여행의 시작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렇게 스무 걸음 쯔음 걸었나, 해안도로에서 박스를 개시해보기로 했다. 박스를 들고 차 몇 대를 수줍게 보낸 후 조금은 창피해져서 박스 뒤로 살짝 숨었다. 놀랍게도 이내  승용차 한 대가 스윽 우리 곁에 멈춰 섰다.


“오? 슨 거야?”

“저거 아니야!”

“응? 가볼까?”

“헐, 대박. 진짜야?”


난리법석을 떨며 차 가까이로 달려가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함께 명랑하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송악산이요.”

“꺄아악”

“헐, 대박. 말도 안 돼!”


그렇게 첫 번째 천사를 만났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너무 감사하다며, 어디가 시냐 혼자 오셨냐 저희 왜 태워주셨냐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첫 목적지(모슬포항-송악산, 연장 4.3km)는 거리가 짧아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근처 매장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감격의 순간이었고, 그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호들갑을 떨며 첫 번째 천사님께 손글씨로 작성한 엽서와 귤을 전해드렸다.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한 번만 태워주세요:)





이상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다시 다음 목적지인 '산방산'을 적은 박스 쪼가리와, 정성스럽게 쓴 두 번째 엽서를 들고 송악산 근처 해안도로로 나갔다. 절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흔들던 박스를 보고 멈춰 선 두 번째 차. 이번에도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근처 식당을 운영하시는 어머니와 그의 딸이었다. 식당에 가시는 길에 잠시 산방산을 들러 유채꽃밭에 내려주셨다. 두 번째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두 번째 천사를 떠나보냈다.


옹기종기, 그리고 부산스럽게 제 몸보다 큰 박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웃는 우리를 보고 신기했는지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주셨다. 아직 제주 방언에 서툰 우리는 몇 단어만 겨우 알아들었지만, 사람 좋게 허허 웃으며 맞장구쳤다.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냥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건너편 식당에서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던 노부부가 보였다. 그때 내가 새하얗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를 제외한 주변 풍경들이 너무 환해서 보이지 않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우리를 향한 그 시선들을. 육지에 살 때에는 어떤 말을 내뱉던 어떤 행동을 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썼고, 해야 할 걸 못하기도 하지 말아야 할 걸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아직 내게는 너무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온전히 내 감정에 집중하는 이 순간, 주변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았고 내 감정만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다음 목적지는 13.5km 떨어진 '중문 해수욕장'이었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그 장소를 떠나려는 찰나, 유채꽃밭 사진사분이 즉석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솔직히 사진을 찍어주시고 돈을 달라고 하실 줄 알았기에 친구들을 말렸다.


"저희, 돈 없어요. 죄송해요."

"돈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오해였다. 그는 정말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주섬주섬 잘생긴 귤 하나를 꺼내드리며 너무 감사하다고 담에 다시 와서 꼭 사진을 찍겠노라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 아저씨를 보이는 모습으로 함부로 판단한 내가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이런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는 호의를 베푸는 순수한 마음과 그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나 오해, 이런 것들 때문에 점점 '정'이란 게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를 그리워하면서도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마음을 점점 닫게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내가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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