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 순 없어!

예측 가능한 인생이 싫어서 두려움을 깨 가고 있어요.

by 올라스



키가 120cm밖에 안되던 꼬꼬마였던 나는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았다. 그 작은 몸으로 놀이터의 모든 기구들 사이로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녔다. "보람아~ 노올자~ 현주야~ 노올자!" 친구들과 밖에 놀러 나가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걸 즐겨했다. 어릴 적부터 히어로가 꿈이었나 보다. 나도 하늘을 날 수 있고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었을 수도. 그래서 난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너는 무슨 애가 겁이 없니!"


그 말을 들을 때면 왜인지 모르게 짜릿했다. 엄마의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맛있는 거'에 혹해 호떡을 얻어먹으러 낯선 사람을 따라갔던 때처럼, 하지 말라고 하는 '금기'를 깼을 때 신이 났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보다는 청개구리에 가까웠던 나의 어린 시절은 사춘기를 겪으며 어젯밤 꾼 꿈처럼 흐릿해져 갔다.


'안 돼'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멀리 가면 안 돼, 친구들이랑 떠들면 안 돼, 수업 시간에 자면 안 돼, 선생님한테 대들면 안 돼, 밥 남기면 안 돼! 그리고 그들은 미래의 나의 모습에 내 나이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최악의 상황을 더해준다. 그렇게 못하는 게 많아질수록 '겁'이라는 걸 조금씩 가지게 됐다. 적당한 타이밍에 착실히 '겁'을 심어주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나면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내 인생을 설계했다. 나는 그 설계도에 맞춰 계단을 밟아나갔다. 그것도 열심히!








"제 꿈을 찾으러 갈 거예요!"

꿈을 찾으러 간다고 패기롭게 선언했다. 퇴사 사유는 꿈을 찾기 위해. 사실 무서웠다. 마음 한편에는 무거운 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어떡하지. 우리 솜이는 어떡하지.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버티자 하는 마음의 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너 그렇게 나갔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고 싶어지면 어떡할래?', '네가 잘하는 게 뭔데?',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나가도 별거 없어' 부정적인 상황 설정으로 내 겁을 키워 회유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그 질문들에 당당히 대답하지 못했다. 흔들렸으니까. 물론 '멋있어, 넌 나가서도 잘할 거야!'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동안 주어진 길을 따라 흘러갔던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는 순간이다.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생처음으로 내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서웠다. 그럴 때 나는 상상을 한다. 내가 퇴사를 하지 않고 이대로의 삶을 유지한다면? 아니 조금 더 늦춘다면? 그럼 여기서 평생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테고 동기들과 술을 마시면서 상사 욕을 하는 걸 하루의 낙으로 삼을 테지. 또 테니스를 치고 심심한 연애를 하며 결혼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살 순 없어! 뭐 빈털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러자고 생각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심심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더 악몽이었다.


그렇게 내 삶은 덜 두려운 쪽으로 선택을 해 나가며 만들어지는 거겠지?








어른이 된 나는 참 겁이 많았다. 처음으로 나에게 갭이어를 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두려웠다. 꿈을 찾아 나선다고 했으니 빨리 뭔가를 새로 배우거나 대단한 걸 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뭐가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게 힘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시골에 집을 구해 한 달을 같이 살았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있었지만 하루에 몇 대 오지 않는 탓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아침을 먹으며 점심 메뉴를 생각했다. 햇살이 좋으면 빨래를 돌리고 책을 보다가 산책을 나섰다. 가끔 눈에 아른거리는 산딸기, 고사리들을 따왔다. 이놈들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상상하며 저녁 식사를 한상 차려먹었다. 밤이 되면 돗자리와 코코볼을 한 움큼씩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 별을 봤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바쁜 하루가 이렇게 채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비가 많이 오는 날 새벽, 아직 잠에서 덜 깬 내 몸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비가 추적추적 꽤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멀리 떠밀려 가서 혼자 바다 위에 고립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바다 컨디션에만 서핑을 하러 가는데, 오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보드를 들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아, 돌아갈까. 추울 것 같아. 좀 무섭네'하고 생각했다. 고민도 잠깐, 빨리 들어가자는 서핑 메이트의 성화에 바로 풍덩 들어갔다. 그래도 막상 들어가니 춥진 않았다. 물이 따땃하게 데워져 있어서 그런가 아늑한 물침대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거세졌다. 만조 타이밍이라 물까지 차오르니 저 멀리 바다가 사하라 사막같이 느껴졌다. 잠이 덜 깬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서퍼들이 꽤 많이 와있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와, 재밌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서핑이라니! 그 순간 두려움이 싹 가셨다. 이런 '해봤더니 죽지 않았어. 별거 아니네?' 하는 경험이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서핑을 하며 바다에서 죽게 된다 해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애가 겁이 없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좋다. 내심 겁먹었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은 척, 하나씩 두려움 리스트를 지워나갈 거다. 그렇게 편견을 깨 가는 게 짜릿하다. 아직도 내 안에 청개구리는 살아있으니 나에게 '-하지 말라!'는 금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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