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연금술사의 산티아고처럼,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한때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을 반짝이며 묻곤 했다.
"꿈이 뭐예요?"
꿈은 그냥 꾸라고 있는 거라며 이룰 생각이 없다고 하는 사람, 지금 회사에 만족하지만 만약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볼링 아마추어 선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람, 글쎄 잘 모르겠네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 엄마 미소를 띠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 하는 사람, 꿈을 꾸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오히려 꿈을 물어보고 다니는 내가 부럽다는 사람.
거꾸로 "그럼 네 꿈은 뭐야?"라고 물어오는 질문에는
내 안의 순수함을 끌어모아 힘차게 대답하곤 했다.
"모르겠어요. 앞으로 찾아 나가려고요!"
어릴 적 유치원에 다닐 때 날 이뻐라 해주신 기린반 선생님이 있었다. 꿈을 물어보는데 다들 의사, 변호사, 교사 막 대단해 보이는 것들이 나왔다. 근데 아직 잘 모르겠는데 다들 하나씩 정하는 것 같았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기린반 선생님이 떠올라 내 꿈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내 최초의 꿈은 선생님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동네 미술학원에 가게 됐는데 원장 선생님이 얘는 미술을 시켜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칭찬받는 게 좋아서 미술학원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때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후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내 집을 내가 만들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의 학창 시절 장래희망란에 적힌 직업들은 선생님, 교사였다.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친구가 먹고 싶은 걸 먹게끔 내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았고,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어릴 적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빨리 알게 됐다. 내가 관찰력이 뛰어나 우리 집에 돈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던 탓인지 뭔지 모르겠다. 내 감정을 먼저 살피기보단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고 쉽게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그 모든 꿈들은 가지 않은 길이 되었다.
18년 가을 중 꽤 쌀쌀한 어느 날, 광화문 중심부에 위치한 천장이 높은 통창의 카페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고소하게 풍기는 베이글 냄새와 커피 내리는 소리가 섞여 기분이 좋았다. 베이글과 우유를 사서 제일 안쪽 자리에 앉으니 모든 테이블의 사람들과 카운터 그리고 베이글 만드는 모습까지 다 보였다. 들려오는 진득한 재즈음악 덕분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깔끔한 블라우스에 슬랙스를 입은 직장인인 듯한 사람들이 보였다. 작년에 다녀왔던 사막 여행 이야기도 흐르고, 하고 있는 주식 이야기도 흐르고, 새로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흘렀다. 그렇게 기분 좋은 소리들이 섞여서 한껏 마음이 들떴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탓에 좋아하는 베이글을 다 먹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 광장을 누비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목에 사원증을 건 직장인들을 보고 한때 나도 반드시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광화문은 아니었지만 꿈꾸던 직장인의 모습과 꽤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전했다.
그때였다, 내 꿈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