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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May 16. 2021

비가 오는 날엔 춤을 추고 싶어

비와 재즈의 일기





비가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싶을 만큼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종종 카페에 가곤 했다. 유독 가고 싶은 공간이 있는데 남원의 여행가게, 방이의 커핀그루나루가 그랬다. 비를 피해 안전한 실내에 들어와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기분을 괜히 센티하게 만든다. 차분해지다 못해 축 내려앉은 내 애증의 앞머리와 함께 마음도 차분해지는 그런 날. 그런 날이 주는 특유의 정취 때문에 비가 많이 온다는 핑계로 더 오래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공간, 그곳에서는 주로 재즈를 들었다. 내가 찾아들었던 건 아니고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재즈를 좋아하셨다.


이태원 재즈바에서의 공연






재즈와 스윙댄스


첫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다 보니 방전되어 퇴근 후의 나, 주말의 나는 무기력하게 변했다. 취미생활도 없었다.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새 취미활동을 갖기로 했다. 춤에 로망이 있었던 나는 웨이브가 되지 않아도 가능한 스윙댄스를 조심스럽게 도전해보고자 동호회에 가입했다.


첫 만남, 토요일 오후 두근거리는 맘을 부여잡고 반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니 신발장엔 넘치다 못해 널브러져 있는 신발들로 가득했다. 문 밖에서도 쿵쿵 빰빰 재즈 음악이 들렸는데 내 심장박동 소리와 겹쳐져 훨씬 크게 들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입사한 이래로 처음으로 눈이 반짝거렸던 순간이지 않았을까. 노란 조명이 비추는 무대가 복고 패션으로 한껏 치장한 사람들로 채워졌고, 그들은 흐르는 스윙 재즈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었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에 대한 충격과 이 세계를 이제껏 알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격정적으로 춤을 추면서도 아이컨택과 미소는 놓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예감했다. 스윙댄스가 나의 행복을 채워줄 것이라고.


그 뒤로 한동안 나는 주말을 스윙으로 꽉꽉 채웠다. 제너럴(입장료만 내고 공간에 들어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출빠(소속된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바가 아닌 타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홍대나 건대에서 열리는 제너럴에 참여)를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삶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두세 시간을 연달아 춤을 추었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회사일이 바빠져서 그리고 고질병이던 무릎과 발목 관절이 안 좋아져서 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비가 올 때면 종종 생각이 나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Pamela's Birthday Jam' 영상을 찾아보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언젠가 다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때를 상상하며.







곧 비가 그쳐 반짝 해가 나면 우산은 애물단지가 된다. 그때의 하늘이 가장 설렌다. 하지만 집 우산꽂이의 우산의 개수는 하나씩 줄어들겠지. 우산을 들고나가기만 하면 꼭 혼자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장우산을 선호했다. 눈에 잘 띄도록 커서 잃어버리기 힘드니까.


앞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습한 날, 물에 젖은 미역처럼 축 처진 앞머리를 볼 때면 비가 괜히 미워지곤 했다. 분명 머리를 감고 나왔는데 집을 나서자마자 떡이 진 것 같은 모습에 조금 우울해진다. 이럴 거면 그냥 비를 맞지! 하면서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비를 무방비상태로 맞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문득 저 안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내가 비를 피해 몸을 은신하고 있는 이 곳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바로 저곳이 무대인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발리의 어느 카페에서


비 오는 날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을 수 있는 용기를 한 번쯤은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를 맞으며 춤을 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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