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 #균형
재작년 겨울, 직업이 개발자인 내 단짝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에게는 진행 중이던 비상주 프로젝트가 있었고 나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드 프로젝트에 골몰해 있었다. 우리는 신들의 섬, 발리로 향했다.
바다 위는 서퍼들로 가득했고, 해변에는 서핑보드를 세워두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핑보드(스펀지 기준)는 2시간에 단돈 5천 원! 우리에게 보드를 빌려준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서핑을 배워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빌려주고 파도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짱구(Canggu)로 넘어온 뒤 숙소를 찾느라 땡볕에서 몇 시간을 돌아다녔다. 더위에 지쳐 갈 때쯤 우리는 완벽한 숙소를 찾았다. 뿌뚜 홈스테이, 이름도 멋진 그곳에서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반겨주었다. 바투 볼롱 비치와 걸어서 채 5분이 안 되고, 옆에는 바로 요가원이 있는 가정집 같은 곳이었다.
아침에 해변에 가 서핑을 즐기고 돌아와 오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카페에 가서 각자 일을 했다. 저녁에는 노을을 보러 다시 해변을 찾았고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스쿠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다가 마술을 연습 중인 웨이터를 만나 식당에 초대를 받았다. 서핑하러 간 해변에서 포토그래퍼와 친구가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안온한 일상의 틈으로 작은 설렘이 비집고 들어왔다.
내륙 쪽으로 들어갔다 다시 외곽으로 그때그때 가고 싶은 도시로 옮겨 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거기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그런 삶을 꿈꿨나 보다. 바로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야!
'사무실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일 못할 건 아니잖아?'
'눈뜨면 바다에 가서 좋아하는 서핑하고 돌아와서 일을 하자. 주말에는 못했던 일을 보충해가며 삶과 일 모두 멋지게 해내는 거, 나 정말 해보고 싶어!'
양양에 보관되어 있던 보드를 정리하고 제주도에 입도 후 적당한 집을 구했다. 꿈에 그리던 집은 아니었지만 가격, 위치, 기간 등을 고려해 적당한 숙소를 구했다. 근처에 일할만한 곳을 찾아봤다. 코워킹 스페이스나 작업하기 좋은 환경의 카페를 찾아 일을 했다. 주로 이른 아침이었지만 물때 맞춰서 서핑을 하고 다시 돌아와 마저 일을 마무리하는 형태의 삶이었다. 꿈꾸던 생활이 시작됐고 멋진 일들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어떤 때는 행복하게 서핑하고 건강하게 먹고 일도 만족스럽게 해내기도 했지만 어떤 날에는 머리 위에 돌이 얹어진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날도 있었다. 너무 행복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아, 몰라. 너무 행복해! 하루 종일 외치는 날도 있었지만 땡볕에 더위를 먹은 탓인지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아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내가 상상하고 그려왔던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매일을 살아가기는 힘들었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은 일인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에는 무기력감에 빠지곤 했다. 해야 할 일이 밀려 마감일에 쫓기듯 후다닥 처리해내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에는 어떤 계기도 없이 텅 빈 공간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외로운 나를 지켜보다 그대로 나를 그냥 놓쳐버리기도 했다.
전 회사 동기는 모든 직장인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씁쓸하게 웃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심할 땐 매주 병원에 갔던 것 같다. 스트레스성 위염에 발목 염좌, 무릎 통증, 담으로 한의원 단골손님이 되었다.
회식자리에서 아주머니가 다 먹은 고기판을 잘못 들어 내 손에 떨어진 기름으로 입은 화상, 바인딩을 하다 손가락이 기계에 찝혀 다친 검지 손가락. 아직 내 몸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너무 아파서 병가라도 내는 날이면 '복귀 후 쌓인 업무들은 언제 처리하나'하는 생각에 아픈 몸을 이끌고 그냥 출근을 할까 고민을 하곤 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며, 나 병들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이건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옐로카드였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가장 소중했던 내가 한 가장 첫 번째 행동은 동네 주민센터에 가 새벽 수영을 등록한 일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우지 않아 자유형도 할 줄 모르는 나는 물에 빠져 죽긴 싫었나 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던 나의 수영 배우기 프로젝트는 두 달 하고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그 이후 일과 삶,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안으로 수영은 스윙댄스, 헬스, 필라테스, 요가의 형태로 이어졌다. 젊은 사람들보단 아주머니들이 많은 수영장에서 킥판을 차는 운동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준 덕분이었다.
원하는 방식으로 살면서 일도 멋지게 해내는 방법을 나는 아직 찾는 중이다. 일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세팅해보고, 명상과 요가로 정신을 붙잡아봤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바다에 나가 온종일 있어도 봤고, 하루 날 잡고 종일 일만 해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꽤 쓸만한 힌트는 얻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꿈꿀 자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한 작은 힌트. 내 전생은 수영 못하는 물고기였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이번 생에 열심히 헤엄치고 수영해서 저 먼바다로 꾸역꾸역 나가려고 하는가 보다. 그래, 한계를 두지 말고 멀리멀리 가고 싶은 대로 가봐. 열심히 따라가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