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편견을 깨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오이를 좋아한다. 오이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던데 어느 펍에서 마셨던 핸드릭스 진토닉도 나는 맛있게 먹었다. 더 맛있는 것들이 많아서 뭐 또 시켜 먹을 맘은 크게 없지만. 몇 해 전인가 내가 스치듯 만났던 어떤 분은 오이를 못 먹는다고 했다. 맛이 없어서. 그는 오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전해줬다. 어느 날, 등산을 하러 혼자 산에 갔는데 정상에서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옆에 배낭에서 주섬주섬 오이를 꺼내서 엄청 맛있게 와그작와그작 먹는 아저씨가 눈에 보였다. 한참 응시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아저씨가 던지듯 손에 오이를 쥐어주고 갔다는 거다. 버릴 수도 없고 받았는데 먹어야지, 하고 오이를 먹어봤는데 역시나 맛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이를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지가 궁금했다. 너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오이 한 박스를 주문해서 집에서 미친 듯이 먹어봤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느냐고? 오이가 맛있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명했다. 맛없다고 생각했던 오이가 좋아지게 된 경험을 통해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그의 두려움은 극복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고 그 안에서 커져만 갔다. 어떤 계기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고, 결국 오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두려움이 바로 편견을 깨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인생은 편견이라는 벽을 하나씩 깨 가며 빚어지는 게 아닐까? 나에게 바다는 두려움이었다. 어렸을 적 본 영화 '해운대'에서 그 거대한 건물을, 사람들을 쓸어 담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른들이 불이 무서워, 물이 무서워? 물어보면 당연히 물이 무섭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저 바다에 빠져서 파도를 타는 사람들은 대체 뭘까? 무섭지도 않을까? 어떻게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물속은 평화로운가. 정말 다른 세상이 펼쳐질까? 어떻게 저렇게 무서운 파도를 상대로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걸까? 서퍼들은 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일까?
어느 여름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핑 강습을 처음 받게 됐다. 안전 교육을 할 때부터 겁을 주는 강사 선생님과 나보다 더 겁을 먹고 있는 친구 옆에서 나는 겁먹지 않은 척, 용감한 척했다. 왜,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진짜 잘하고 싶은 거. 누구도 몰랐겠지만 나에게 서핑은 그렇게 극복하고 싶은 두려움 1번이 되었다. 무섭지만 극복해보자. 한걸음 나아가 보자.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묶고 작게만 만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보자고.
온몸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서 패들을 열심히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속도가 붙지 못하니 파도가 보드를 너무 크게 들어 올려 노즈 다이빙을 하기도 했다. 라인업으로 들어가면서 깨지는 파도에 던져지고 세탁기 속 옷들 마냥 통돌이를 당하기도 했다. 조류가 셌던 어느 날은 어딘가로 둥둥 떠내려갔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울고 싶었다. 이미 힘은 빠질대로 빠진 상태였고 나를 안전하게 모래사장으로 끌고 나가줄 구원자는 없었다. 나 스스로 극복해내야 했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았고, 더 이상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오기'다. 비슷한 말로는 '쓸데없는 승부욕'이라고 한다. 나는 그랬다. 반에서 1등이 하고 싶어서 체육시간에 '철봉에서 뒤로 돌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내줬을 때 매일같이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골반에 멍이 잔뜩 들도록 연습을 했다. 전공 교수님의 '너는 여자라 힘들어, 다른 거 해. 대학원이나 가'라는 소리에도 나는 오기로 토목공학과를 졸업했고 공기업에 당당히 취직해 막일판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조금씩 지금도 극복해가고 있다. 지금도 바다가 무섭다. 무서우면서도 설레고 행복하다. 내가 서핑을 하고 있어. 바다 위에 내가 있고, 내가 파도를 타고 있어!
직장 다 때려치우고 양양 바다에 정착해 서퍼로 살아가는 사람, 파도를 따라 여름엔 제주도로, 겨울엔 발리나 하와이로 떠나는 자유로운 삶, 연차를 내고 혹은 주말마다 서핑하러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대체 뭘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서핑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날이 좋으면 해 지는 걸 보러 가고 파도가 좋으면 서핑을 하러 가고 동시에 내 일마저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나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더라면, 오기로 두려움을 극복해 내 볼 용기를 갖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 끔찍하게도 그 삶을 꿈꿔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랬다면 '저런 사람들은 타고난 거야, 나는 내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하면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고, 반복되는 관행을 답습해가며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승진도 하고 그만큼 오른 월급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테지.
(물론 자세도 엉망이고 잘 타지도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