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길어버렸지?
요즘 김포-제주 간 비행기를 자주 탄다. 하늘길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책을 읽다가 곯아떨어지곤 한다. 예정된 출발 시간은 저녁 7시 5분. 하지만 30분이 지연되어 7시 35분에나 출발하게 되었다. 해가 지는 하늘이 보고 싶어 창밖을 바라봤지만 내가 앉은자리는 해가 지는 쪽의 반대편이었다. 생각 없이 좌석지정을 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는 쪽의 반대 하늘도 충분히 아름다울 거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었다. 신기하게도 반대쪽 3자리가 모두 비어있었다. 빈자리에 쨍한 햇빛이 들어왔다. 사람이 없었던 덕분에 그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 감사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보고 또 봤던 거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경이롭게 다가온다. 아득히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본다. 산과 강, 논과 밭, 밀집해있는 건물들의 형태를 미루어 짐작컨대 서울의 어디쯤 인지도 헤아려본다. 인간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한낱 이런 편리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사는 인간에 불과하구나 하는 무력함이 스쳐 지나갔다.
우유니 사막에 눈이 내리면 이런 모습일까. 내 상상 속의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런 모습 이리라 상상한다. 몽글몽글 낮게 깔린 구름이 파란 바다에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 같기도 했다. 기꺼이 오늘 한 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을 온전히 이 작품에 할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이 만들어 낸 훌륭한 예술 작품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내 수많은 별명 중 하나는 미역이었다. 바위에 붙어있는 그 미역. 항상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고 촉감도 부드럽다고 친구들이 내 머리를 자주 만지곤 했다. 손으로 빗질을 하고 머리를 땋아주기도 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엔 머리가 늘 길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귀밑 3cm까지 밖에 기르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한 머리를 기를 수 없었다. 왜 머리를 짧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의 난 선생님에게 따져 물을 수 없었다. 그 이상한 규정 때문에 매일 자라나는 머리 때문에 매주 미용실에 가야만 했다. 대체 학생이 돈이 어디서 나는가. 그 돈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고 모든 학생들이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령이 생겨 친구들과 서로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머리를 다듬어주곤 했다. 다행히 졸업할 때쯤엔 귀밑 5센티로 규정이 완화됐고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 그런 규정은 사라졌다고 들었다. 졸업을 한 지 꽤 됐지만 마의 '거지 존'을 견디지 못한 나는 오래도록 단발을 유지했다. 단발이 더 잘 어울리기도 했고. 지금의 내 머리카락은 갈비뼈까지 내려온다.
갈비뼈까지 내려온, 지금은 푸석푸석하다 못해 제멋대로 엉켜버린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반짝반짝 노란빛의 오징어 잡이 배로 빛나는 제주 바당을 바라보았다. 아, 언제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었지? 거봐, 나도 머리카락 기를 수 있지? 하고 거지 존을 벗어날 때까지 참은(혹은 방치해둔) 나의 인내심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보지만 곧 의미 없는 일이란 걸 깨닫는다. 언제부터 머리를 길렀지 생각해보니 퇴사하고 나서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둥지를 떠나고서부터 기르기 시작한 머리니까 지금 내 머리 길이만큼 나는 성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깝다고 조금만 더 지켜보겠다고 '조금만, 조금만...' 하며 아직 쳐내지 못한 미련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