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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n 21. 2021

네,서울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벗어나고픈서울 사람이야기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리상 서울이 맞다. 하지만 서울인 듯 서울이 아닌 듯 변두리에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나의 교육을 위해 열심히도 이사를 다녔던 우리 부모님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초중고에 대학까지 나왔다.


고등학생 시절,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동경했다. 사투리를 쓰는 친구를 보면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전국에서 모인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종종 친구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쳐달라고 조르곤 했다. 잘 따라 하지 못하는 나를 귀엽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사투리가 왜 배우고 싶냐며 되레 이해할 수 없다며 일부러 내 앞에선 사투리를 안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눈치 없게도 나는 집이 멀어 자취하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불편하고 힘든 타지 살이였겠지만 나에겐 새롭게 펼쳐진 넓은 가능성의 세상이었다.


이 작은 나의 서울이라는 우물에서 나는 항상 벗어나고 싶었다. 지하철로 1시간 거리인 학교가 멀다며 공부에 집중한다고 고시원에 살지를 않나. 봉사활동 간다고 전국으로, 해외로 다니지를 않나. 휴학하고는 캐나다로 워홀을 간다며 준비하다가(캐나다 대사관이 파업하느라 모집이 연기되었다) 알바 개수를 늘려 돈을 더 벌더니 집 떠나 3개월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엄마는 '역마살'이라는 표현을 썼다. 애가 아빠 닮아서 역마살이 꼈다나 뭐라나. 그 이후에도 취업준비는 안 하고 각종 대외활동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전국에 지사가 있는 큰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됐다.


안정적이고 좋은 회사에서 나는 잘 적응했다. 적어도 그땐 그래 보였다. 신입 연수 막바지에 신입생의 발령지 발표가 났다. 나의 첫 발령지는 서울과 가까운 하남이었다. 나는 한동안 슬퍼했다. '왜, 전국에 하고 많은 지사중에 수도권이냐! 나는 저 멀리 타향살이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반면 수도권에 사는 동기들은 오히려 내가 부럽다면서 타지 살이를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하소연했다. 억울해 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3년이나 그 지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그 지역마저 떠났다.


그리고 제주에 왔다.







서울에서 나는 매시간 매분 매초 그렇게 시간에 얽매여 살았다. 친구와의 약속, 출근시간, 미팅 시간, 퇴근시간에 딱 맞춰 움직였다. 그러다 차가 막히거나 열차가 지연되는 날에는 약속시간에 늦곤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열차를 탔어야 했는데, 신호가 조금만 빨리 바뀌었어도! 그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의 기운에 휩싸이면 그 여파는 어김없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가곤 했다. 일상을 여행하듯 살라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매일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을 겪어내느라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가령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간 전시회 내용엔 실망했지만 기프트샵에서 친구들에게 줄 엽서를 고르는 행복,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머리를 묶으라며 종업원이 건네준 메밀 색 머리끈을 받았을 때의 행복 같은 거 말이다. simple pleasure, 커다란 일탈이 아닌 '작은 딴짓'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 도시에선 내 마음도 느리게 흐른다. 천천히 내 마음이 흘러가는 걸 지켜본다. 마음 한 가닥 한 가닥을 지나쳐보기도 하고 붙잡아보기도 하며 삶을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도시에서 나의 삶을 살아간다.






서울을 오래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거 하난 인정한다. 서울의 밤은 아름답다.


반포 한강공원의 야경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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