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라스 Nov 11. 2021

그래서 내 취향은 뭐예요?

그래서, 당신의 취향은요?



성인이 되어 떠난 낯선 곳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야 자신을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된 친구가 있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묘사했는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졌다고 했다. 굿 서포터 기질을 가진 그 답게 여자 친구를 서포터 해주며 재미나게 살았지만 그 시간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은 없었던 거다. '무슨 노래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항상 '다 좋아해요'라고 답하던 그가 자신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우산을 쓰고 집에 가는 길, 그 짧은 15분 동안 우산을 가림막 삼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는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을 이야기하며 그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고 이를 계기로 레벨업 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 덕에 자신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나 다 잘 먹어, 너네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사람이다. 그게 배려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매번 메뉴 정하는 게 힘들다는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미안해,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다 좋아서! 이게 배려하는 건 줄 알았어' 하지만 그 다음번에도 메뉴 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메뉴를 고르려고 하니 두 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메뉴들. 'A가 좋을까? B가 좋을까? 친구는 뭘 더 좋아할까? 다른 메뉴랑 A가 더 잘 어울리겠지?' 그 길고 긴 침묵 끝에 화가 났다.


'아니, 나!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면 되잖아! 뭐 먹고 싶지? 내 취향이 뭐지?'






역마살이 낀 나는 때가 되면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종종 색다른 경험을 한다. 유명 관광지를 갔을 때의 감동보다 멍하니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의 상념이 더 생동감 넘친다. 낯선 상황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수 있는 생각들.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던 친구와의 대화, 싸워서 서먹서먹한 상태로 헤어지게 된 친구에 대한 생각,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 무엇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는지. 일상에서, 나에게서 벗어나는 게 목적인 줄로만 알았던 여행이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에서 시작한 스포츠, 서핑을 하면서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혔다. 파도에 연속으로 통돌이 당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마주하면서 서핑의 룰을 하나씩 익혔다. 파도를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서핑이라는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니 새로운 세상이 한 꺼풀 벗겨진 듯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게 됐다. 파도를 잡아 타는 것보다 파도를 기다리며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햇살, 바람, 파도 그리고 곁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좋은 거구나- 하고.


나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시도하는 편이다. 퇴사 후 디자인이 하고 싶어 툴을 배웠다. 마케팅이 하고 싶어 들어간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을 하게 됐고 눈여겨보았던 코딩까지 배우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 꾸준히 관심을 둔 덕분에 진로 강사로 출강을 종종 나간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에너지에 기 빨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그 에너지에 힘도 얻는다.


어떤 강의를 나가건 '나'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관심사',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넌 뭘 좋아하니?'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본 기억이 없다. 아이들이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확고한 취향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어렸을 적에 그런 고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더 아이들 스스로 고민해보게 한다. '나'에 대해 쓰고 발표하는 걸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멋진 기획을 써 내려가는 친구들도 있다. '이 수업 덕분에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같은 피드백을 받을 때면 뿌듯하다. 


우리가 끌리는 행위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일컫는 경험들의 대부분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부정하고 싶은 나를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몰랐던 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경험이었다. 내 취향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일이 그래서 기쁘고 즐겁다.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는 독립서점을 찾아가는 걸 좋아해요. 그 서점만의 시각으로 큐레이팅 된 책장. 요즘은 고전 문학, 소설을 즐겨 읽어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하나씩 사 모으고 있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에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고 지구와 동물,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서핑 문화, 남미 문화에 관심이 많고요. 나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여유를 마음 한켠에 마련해 둘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좋아요.


그리고 서로의 취향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취향은 어떤가요?





작가의 이전글 어떤 습관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