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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Nov 16. 2024

침대 이혼

코골이는 이혼 사유, 따로 또 같이의 미학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숙소가 있었다. 오랜만에 부부가 같은 방을 썼다. 산에서는 밤이 일찍 찾아든다. 불을 끄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여행길이 피곤했던지 안 골던 코까지 골았다. 애써 안 들리는 척 딴생각을 해보지만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침대를 따로 쓰자고 했다. 부부가 따로 자다니, 이혼하자는 게 아닌데도 큰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게 힘들다고 했다. 내가 잠자리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고, 코 고는 소리도 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했다. 부부는 고우나 미우나 같은 잠자리를 써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나는  코를 곤다. 피곤하거나 술을 마시면 코골이가 더 심해진다. 어느 날 내 코 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 잠을 깼다.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수십 년간 참고 지낸 아내에게 미안했다. 침대를 따로따로 쓰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퇴직을 하고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자 아내가 서재를 만들어 주었다. 아내는 안방에서 딸과 같이 자고 나는 서재 겸 침실에서 혼자 잔다. 처음에는 아내와 다른 방에서 자니 이러다가 이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고 혼자 자려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신경 쓰지 않고 내 뜻대로 수면생활을 할 수 있으니 혼자 잠드는 게 편해졌다.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하는 부부가 각자 다른 방에서 자는 것을 미국에서는 수면 이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각방 생활이라고 했다가 요즈음은 '침대 이혼'이란 말을 쓴다고 한다. 사실 우리 선조들은 안방과 사랑방에서 따로 지냈었다. 같은 방에서 한 침대에서 자든 다른 침대에서 자든, 아예 다른 방에서 잠을 자든 부부가 정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침대 이혼을 하면 수면의 질이 올라간다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절반이 넘는 부부가 침대 이혼 중이라고 한다. 부부는 '늘 같이' 보다는 '따로 또 같이'가 현명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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