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소고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고서
웰메이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무렵 아일랜드의 어느 소도시. 오로지 평화만 가득해야 할 수녀원에서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학대와 착취가 벌어진다. 이를 알게 되면서 주인공 킬리안 머피의 인간적인 고뇌가 시작한다. 영화에서 그는 석탄 배달부이다. 일을 마치면 제일 먼저 손에 묻은 검은 석탄재를 말끔히 씻는다. 수녀원의 은밀한 비밀도 석탄 창고에서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연탄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탄을 만지다 보면 온몸이 새까맣게 변했다. 얼마나 심하게 변했는지 목욕탕에서도 영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검게 변하는 내가 보기 싫었다. 초라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검은 작업복을 입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눈치 볼 일도 없어지고, 옷이 더러워질까 봐 조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하루 종일 검은 모습으로 지내다가 하얀 얼굴로 목욕탕을 나설 때면 내가 천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서 킬리안 머피는 어렵게 일군 가정의 평화가 깨질 위험을 감수하면서 학대받는 소녀를 구출한다. 스스로 어둡고 추운 세상을 밝히는 석탄이 되기로 마음을 정한다. 창가에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매섭다. 살면서 내겐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외면한 적이 없었을까. 내 몸을 더럽힐까 검은 연탄재에 눈만 찡그리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반성해 본다. 안도현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