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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큰 소리 못 내고 즐거워했다

by 이래춘

40도 가까운 고열과 온몸이 떨리는 오한, 칼로 에는 듯한 극심한 두통으로 해열진통제 없이는 잠시도 버틸 수 없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모든 게 사라졌다. 외과수술인데도 가벼운 진통마저 없었다.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약성 진통제가 주삿바늘로 계속 공급되고 있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주치의가 못 미더웠다. 너무 극단적인 상황만 제시해서 환자를 불안하게 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만나니 수술 집도의가 천하의 명의로 보였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시 세끼를 한 그릇씩 꼬박꼬박 먹었다.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 기준안으로 들어왔다. 염증수치도 수술 전에는 27까지 올랐는데 1.2까지 떨어져서 정상 범주에 근접했다.


금방이라도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원환자는 회진이라고 하여 의사가 병실로 찾아와서 진찰을 본다. 어느 날 의사가 진료실로 불렀다. 뭔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폐에서 공기가 새고 있습니다."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두 차례 간이 시술을 했다. 육안으로도 X-ray 상으로도 실패가 확인되었다. 다시 의사가 진료실로 부르더니 이틀 후 정식 수술을 하자고 했다.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전신마취, 몇 시간의 수술, 회복실, 치료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찔했다. 한 달 넘게 내 곁에서 고생한 아내 보기가 미안했다.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큰 벌을 받나 싶었다.


수술날 아침 일찍 주치의가 병실로 왔다. 수술 주의 사항을 얘기하려 왔겠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의사가 흥분하며 말했다.

"수술 취소합니다. 공기구멍이 막혔어요. 지난번 간이 시술이 효과를 봤어요."

와우 기적이 내게 왔다.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같은 병실에 나보다 위독한 환자가 있어 큰소리는 못 내고 아내와 두 손을 맞잡고 흔들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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