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모자 쓴 나
내겐 모자가 없다. 아니 딱 하나 있다. 고구마 장사 모자처럼 귀까지 내려오는 방한모가 있지만 디자인보다 기능에 충실한 편이라 등산이나 추운 밤 산책 갈 때가 아니면 쓰질 않는다. 내 머리가 큰 편이라 맞는 모자를 찾기도 힘들고 모자와 썩 어울리지도 않아 모자와 인연이 깊지가 않다.
지난달에 아내와 바람도 쐴 겸 옷 구경하러 서울 근교 아웃렛 매장에 갔다. 아내가 골라 준 겨울 바지 두 벌을 샀다. 옷 구매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어 내가 맘에 든다고 함부로 살 수 없다. 조금 기분 나쁠 때도 있지만 경험상 내가 고른 옷보다 아내가 골라준 옷이 더 예쁘고 실용적이라 불만은 없다.
옷 가게를 나서려는데 아내가 모자를 골라 줘서 이것저것 써보았다. 그중에 하나가 맘에 들었다. 창이 앞으로 나온 베레모인데 색상이나 디자인이 무난해 보였다. 무엇보다 매장 직원의 말이 작가 선생님 같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봐도 작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글이 쑥쑥 쓰질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작가 모자를 쓰고 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글쓰기 모임에 작가 모자를 쓰고 갔다. 문우들은 처음 모자를 쓴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 모자와 어울리고 예쁘다며 진심으로 칭찬을 해줬다. 물론 모든 이가 칭찬해 준 건 아니다. 기분이 좋아 수업 시간 내내 모자를 벗지 않고 수업을 마쳤다. 며칠이 지나고 또 다른 모임에 작가 모자를 쓰고 갔는데 어쩌면 한 명도 아는 척을 안 했다. 기분이 나쁘지만 "나 모자 쓰고 왔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슬며시 벗어서 가방에 찔러 넣고 말았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의 변화에 둔감하고 관심이 별로 없다. 나도 아내가 염색을 하거나 파마를 해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았다. 타인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진심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피드백을 해주어야겠다.
칭찬은 관심이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