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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겨울비, 이별, 최장순 작가를 그리며

조지윈스턴의 피아노 앨범 디셈버

by 이래춘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겨울이니 눈이면 좋겠지만, 겨울비도 운치가 있어 좋았다.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수필 한 편을 읽었다. 지난 10월에 고인이 되신 최장순 작가의 글 <12월의 강가에서>이다. 현학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은 담담한 글이다. 깊은 산사에서 향기 맑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12월이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 해를 마감한다고 한다. 조지 윈스턴의 불후의 명반 '디셈버'에 실린 열두 개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작가는 북한강 양수리로 차를 몰았다. 가을을 회고하다가, 암을 발견하고 수술했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아홉수를 넘겼으니 앞으로 십 년은 끄떡없겠다고 자신했는데 11년이 지난 올해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최장순 작가를 잘 모른다. 작년 등단기념식에서 뵙고 공식 모임에서 한두 차례 뵌 게 전부이다. 홀쭉한 몸, 조심스레 걷는 발걸음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온화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 나긋한 목소리가 아직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12월 비 오는 날에 만난 고 최장순 작가는
"흘러가버리는 것을 붙잡으려 들지 말라!"고 하면서 조지 윈스턴의 청량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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