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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Sep 22. 2024

친절,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안경 코걸이 고무를 수리하면서...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친절의 사전적 의미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미명하에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요구를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 왔다. 근래 들어서는 일방적이고 무례한 손님의 요구를 용서하지 않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이다. 무엇보다 CCTV와 휴대폰이 보편화되어 있어 손님의 부당 행위에 대한 증거 확보가 손쉬워졌다. 업주 입장에서는 법적 다툼에서도 불리할 게 없으니 당당히 대응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철없는 어른들의 예의에 어긋난 말과 행동에 상처받는 모습을 보곤 했다. 손님이 하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서든 음식점에서든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감사하다' 말을 꼭 하려 한다.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는 종업원뿐만 아니라 내 기분도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친절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 제공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동네에 자주 가는 안경점이 있다. 우리 부부의 안경과 선글라스를 몇 번 맞추었다. 안경점을 다녀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매장은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정리를 해 놓았다. 젊은 안경점 대표는 늘 활기차고 씩씩하다. 요즘 유행을 감안해서 나에게 맞는 안경을 제안하려고 애쓰고 필요한 연락도 제때 해주어 신뢰가 간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폭염도 가을비와 함께 사라지듯 세상은 모두 변한다. 안경점도 변했다.

  어느 날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안경 코걸이 고무가 하나 빠져나갔다. 안경점에서는 일주일이면 수리가 끝난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전화를 하니 추석 연휴로 안경공장의 일감이 폭증해서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림의 연장은 상관이 없다. 사전 연락도 없고 약속을 안 지켰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는 게 불쾌했다. 일주일 후 안경점을 찾았다. 살갑게 대하던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나 사무적인 대응에 놀랐다. 수리가 끝난 안경을 손으로 건네지도 않고 유리 진열장 위에 그냥 놓았다. 비용을 계산하려니 무상이라고 하는데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실수한 게 있나 되짚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안경점 사장은 비싼 다초점 안경과 더 비싼 선글라스를 맞출 때만 친절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안경점 사장이 불친절한 사람으로 변한 게 아니었다. 그의 친절은 돈으로 사는 거였다. 

  친절,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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