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풍요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소중했던 것을 앗아가버리기도 한다. 휴대폰의 급속한 발달은 삐삐, 전자사전, 시계, PMP, 디지털카메라, 전화기 등 여러 기기를 시장에서 사라지게 했다.
내가 어릴 때 전화기는 귀했다. 동네 이장이나 일부 부잣집만 가지고 있었다. 의사소통은 주로 편지를 통해 이루어졌고 아주 긴급한 일이 생길 때만 이장집을 통해서 전화 연락을 했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전화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화기 없는 집이 없었다. 심지어 두 대를 놓는 집도 생겼다.
휴대폰이 나오기 전이라 집 밖에서는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당시 공중전화는 시내만 통화되는 전화기와 시외까지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시외 겸용 전화기를 DDD(Direct Distance Dialing)라고 불렀다. 가수 김혜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의 애틋함을 노래한 'DDD'라는 곡을 통해 일약 유명 가수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새치기했느니, 너무 오래 전화를 사용하느니 말다툼이 빈번히 생겼다. 심지어 말다툼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 안산 반월 공단에서 수금 아르바이트를 했다. 드라이기를 구입한 공단 근로자가 약속한 수금 날에 할부금을 받아 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단 근로자들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돈 줄 생각을 안 한다. 협박도 하고 사정도 해서 억지로 어렵게 받아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그날도 분명 출발 전 전화에서 수금을 약속해 놓고도 공장을 찾아가니 바쁘다면 만나 주질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서 다음 수금처로 터덜터덜 폭염 속을 걷고 있었다.
DDD 전화 부스를 지나치다 자세히 보니 전화기가 살짝 열려 있었다. 전화기 안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여럿 있었다. 100원을 넣고 전화를 걸면 동전 통으로 떨어지고 그 돈을 다시 넣는 식으로 무한정 시외전화가 가능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수금 실패로 쌓인 스트레스를 맘껏 시외전화하면서 풀라는 신의 계시 같았다. 전화번호 수첩을 꺼내 한참을 통화했다. 그리고 전화기가 열리지 않게 고정을 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랏돈으로 시외통화를 했다. 엄연히 불법행위인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자금 우리 집의 인터넷, 휴대폰, IPTV는 모두 KT를 사용하고 있다. 조금 속죄가 되려나 모르겠다.
문 열린 DDD, 가끔 그런 전화기를 다시 만날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장거리인데도, 하루 종일 사용해도 요금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전화. 꿈같은 선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일상이 그런 선물 같다. 아침이면 하루치의 일상이 충전되어 요금표시등에 표시된다. 요금을 받는 이도 없다. 팬데믹 기간 절실히 느꼈던 일상의 소중함을 오늘 아침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일상은 꿈같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