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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Oct 04. 2024

기억이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선명하다. 살면서 슬프고 괴롭기만 했을까. 기쁘고 즐겁기도 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 더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젊었을 때이다. 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해외 담당자 한 명과 내수를 담당하던 나 그리고 과장 하나로 팀이 꾸려졌다. 환송식 하던 날 해외 담당자가 사고를 당했다. 노래방에서 2차를 끝내고 3차 호프집으로 옮기는데 발을 헛디뎌 계단을 굴렀다. 머리에서 피가 났다. 의사는 큰 사고는 아니지만 당분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낯선 나라에서 남자 셋이 일을 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생겼다. 과장은 머리가 생생한 나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마라. 목소리가 너무 크다. 비싼 소주 시키지 마라" 등등 한 대 쥐 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말만 했다. 일을 마치고 3개월 만에 귀국을 했다. 

  환영식에서 그동안의 설움을 털어놓았다. 입사 후배가 그만하라고 만류를 했다. 개의치 않고 과장의 부도덕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부서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낱낱이 밝혔다. 그해 나의 인사고과는 25명 부서원 중 꼴찌였다. 과장의 괘씸죄에 걸렸기 때문이다. 같이 근무하기 싫어 부서 이동 요청을 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 다른 부서로 옮겼다. 더 이상 과장과 같이 근무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은 나의 기억이지만 과장의 기억이 궁금하다. 기억은 내가 유리한 쪽으로 편집된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면서 과장에게 분노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 때문에 과장이 스트레스받은 건 없을까. 그 스트레스를 잊지 못해서 오늘도 과장은 나에게 분노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런 마음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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