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이 1호선보다 더 좋은 이유
지하철 음주 탑승기
어릴 때 방학을 하면 서울 누나 집에 놀러 가곤 했다. 긴 여행이었다. 먼저 두 시간에 하나 있는 버스를 타고 기차가 다니는 소읍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하루에 두 번 다니는 완행열차를 기다렸다. 완행열차의 이름은 비둘기, 좌석번호도 없고, 직각으로 된 롱 시트에는 3명이나 앉았다. 기차를 타면 찐 계란을 먹었다. 목이 마르면 사이다를 마셨다. 반나절이나 걸려 서울역에 도착을 하면 지하철로 갈아탔다.
산골 소년은 서울만 오면 동서남북이 헷갈렸다. 지하철은 더욱 신기했다. 땅속으로도 다니고 좌석보다는 통로가 훨씬 넓었고 문도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지하철 안팎을 신기한 눈으로 살피다 보면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기가 싫었다. 어린 소년은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 소년의 꿈은 쉽게 이루어졌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그때는 여의도에 지하철이 없었다. 회사와 가장 가까운 역이 대방역이었다. 대방역에서 회사까지는 출퇴근 셔틀버스를 탔다. 퇴근 후면 대방역 근처 슈퍼에 들르곤 했다. 먼저 퇴근한 동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안주는 새우깡이나 고추참치캔. 소소한 직장인의 낙이었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옳지 않은데 술자리는 지나침이 자주 일어난다. 맥주 한 잔이 한 병이 되고 세 병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여의도로 들어가 호프집, 소주집을 전전했다. 술값은 아깝지 않은 젊은 회사원은 택시비는 아까웠다. 술김에도 대방역으로 버스 타고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집이 있는 석계역까지는 사십 분. 한숨만 자려고 했는데 눈을 떠 보니 의정부역이었다. 한참을 지나왔다.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서 지하철을 탔다. 이번에는 정신 차리고 석계에서 내려야지 굳은 마음을 먹었는데 구로역이었다. 처음 탔던 대방역보다 더 지나왔다. 다시 집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탔다. 이번에는 의정부 북부역. 시간이 늦어 지하철 막차도 끊겼다. 어쩔 수 없이 심야 할증 붙은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래도 지하철 오래 타고 싶은 어릴 적 소원은 이루었다.
그다음 날부터 술을 먹은 날이면 의정부행 열차를 타지 않았다. 배차 시간이 더 걸려도 성북행 열차를 탔다. 성북은 석계 다음 역이라 잠깐 졸아도 금방 되돌아올 수 있었다.
회사가 역삼동으로 옮겼다. 집도 이사를 했다. 회사도 집도 2호선 역 근처였다. 회사는 역삼역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 통근하기 편했다. 무엇보다 술을 먹어도 걱정이 없었다. 2호선은 순환선이라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도 문제가 없었다. 한숨 더 푹 자면 다시 내려야 할 곳에 도착했다. 지하철 2호선이 1호선보다 훨씬 좋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