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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Oct 06. 2024

이륙하는 순간 처음 본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비행공포증 그녀

  회사 다닐 때이다. 제주도로 출장을 가게 되어 비행기를 탔다. 바깥 풍경을 보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떠날 채비를 마친 비행기는 서서히 움직여 직선으로 길게 뻗어있는 활주로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숨 고르기가 끝나자 굉음을 내며 가속을 시작했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비행기가 드디어 기체를 들어 올렸다. 육중한 몸피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지에서 창공으로 경계가 바뀌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다. 나는 이륙하는 순간의 이 아찔함이 좋다. 새로운 출발이 주는 설렘도 느끼게 된다. 


  내 옆자리에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 앉았다. 그런데 비행기가 고속으로 활주 하는 순간 말도 없이 내 손을 잡았다. 손에 힘을 주면서 꽉 잡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가슴도 뛰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행기가 이륙에 성공하자 슬며시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혹의 스킨십은 아니었다. 궁금증을 못 이겨 한참 후에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때 극심한 공포를 겪게 된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그제야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아찔함과 설렘을 느꼈는데, 바로 옆에서는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내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제주 공항이 보였다. 비행기의 고도가 급격히 낮추어졌다. 금방이라도 착륙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툭박진 내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비행기는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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