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원 등원기
대구로 추억여행을 떠났다. 대구는 내가 영업소장으로 진급을 하고, 아들이 유아원에 입학을 하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곳이기도 하다. 이리 저래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때 살던 아파트를 찾아갔다. 보안 게이트가 설치된 건 말고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살던 1005호 앞에서 아파트를 내려다보았다. 놀이터 근처에 후문이 보였다. 아들이 유아원 버스를 기다리던 곳이다.
네 살 먹은 아들은 유아원 가는 첫날, 엄마와 잠시 헤어지는 게 어찌나 서러운 일인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인솔 교사와 아내가 억지로 버스에 태웠지만 창문을 두 손으로 짚으며 엄마를 목 놓아 불렀다. 이별도 그런 이별도 없었다. 정말 생이별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내는 아들을 어떻게 달래서 등원을 시킬까 걱정을 하며 유아원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하자 아들은 엄마 손을 뿌리치고 손을 흔들며 유아원 교사에게 달려갔다. 이건 뭐지, 돌변한 아들의 모습에 아내는 허탈하면서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한다.
아들은 유아원 가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아내가 나갈 채비를 하는데 빨리 나가자고 응석 부리던 아들이 혼자서 집을 나섰다. 뒤따라 유아원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갔지만 아들은 없었다. 불안한 아내는 아파트를 여기저기 샅샅이 뒤져 보고 혹시나 해서 집에 와봤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유아원까지 뛰어갔다. 유아원 원장으로부터 아들이 등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를 하며 다리가 풀려 주저 않았다. 마음이 진정되자 아들이 수업하고 있는 교실에 갔다. 창문으로 살짝 아들을 보니 세상 해맑은 얼굴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아내는 아들에게서 배신감을 또 느꼈다고 한다. 나중에 아들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출발한 줄 알고 걸어서 갔다고 태연히 말을 했다. 네 살 먹은 아이가 걸어가기에는 꽤 멀고 골목길이라 복잡한데 지금도 쉽게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