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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Oct 14. 2024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집착 없는 베풂

  어느 수필 책에 특집으로 내 글이 세 편 실렸다. 아직 글 실력이 없어 부끄러웠지만 성장을 위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썼다. 책으로 인쇄된 글을 보니 노트북 화면이나 프린트 출력물로 볼 때와 기분이 달랐다. 뿌듯한 마음이 컸다. 가족, 지인, 친구, 옛 동료 등 보낼 수 있는 곳에는 책을 보냈다. 내 글이 실린 페이지를 쉽게 찾도록 포스트잇을 붙이고 내 사진 밑 이름 옆에 정성 들여 사인도 했다. 배달 확인을 위해 비싼 택배로 보냈다. 그런데 글이 좋다고 칭찬을 해 주는 반응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무응답이었다. 그냥 책을 잘 받았다는 연락조차 없었다. 속상했다.


  다이어트 부담감이 큰 아내에게 워치를 사줬다. 워치로 체크해서 하루 오천보만이라도 걸어 보라고 했다. 나는 걷기만 해서 살을 많이 뺐다.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만 보이상을 걷는 것이고 효과를 크게 보았기에 오 년째 지켜오고 있다. 기대와 달리 아내는 워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워치가 걸음수 측정을 잘 못한다는 타박만 했다. 아내와 가까운 공원을 같이 걷고 오는데 워치 성능 탓을 또 했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욱했다. "나랑 같은 기종이고 나는 아주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선물해 준 사람 앞에서 선물 탓을 하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했다. 그 말에 아내는 바로 미안하다고 하면서 워치를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잘 안 쓴다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고 했다.


  불가(佛家)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다. 집착 없는 보시를 말한다. 조건 없이, 보상을 바라지 말고 베풀라고 한다. 반대급부를 원하게 되면 상대 반응에 따라서 좋은 일을 하고도 고통의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글이 실린 수필책이든 아내에게 준 워치이든 내가 선물을 주었으면 그걸로 끝이어야 했다. 내 선물을 받아 준 것에 감사하면 되었다. 선물에 대해서 상대가 좋은 반응을 해 주길 기대했다가 실망한 것이었다. 아직 나는 살아가는 지혜가 한참이나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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