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가가 모교 교장이었다
고향을 다녀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 삶의 영화에 조연배우로 출연했던 부모, 친지, 이웃 어른. 어린 시절을 소박하지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만들어 주었던 그들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대본도 없는 영화를 웃으며 함께 촬영했던 무대도 사라졌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티가 난다. 무너진 흙담, 잡초가 가득한 마당, 푹 꺼진 지붕. 이제는 고향으로 가는 기적 소리가 그리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김규련 수필가는 평생을 교육계에 헌신했다. 젊은 시절 투병을 하면서 수필을 접하게 되었고 등단까지 하게 되었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옥고(玉稿)를 발표하였으며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번 수상했다. 그의 대표작 <거룩한 본능>은 교과서에도 실려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어제 김규련 수필집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의 교장 첫 부임지가 나의 모교였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교장이 그였다.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를 경북 오지 마을 내 고향에서 만났다니. 그에 대한 기억은 한 장면도 없는데 갑자기 수필 책 표지에 실린 그의 얼굴이 친숙해 보인다. 그는 수필가로 등단한 해에 모교 교장으로 부임을 했다. 모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개구리 소리> <행복한 유배> 등 꽤 많은 수필을 캐냈다고 책에서 밝혔다. 내가 숨 쉬고 뛰놀던 시공간이 그의 작품의 배경이었다. 어릴 적 아련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