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맛있다. 심야시간에 먹는 라면은 더 맛있다. 늦은 밤 라면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어젯밤에 아내와 근처 공원을 한 시간 반 넘게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라면이 생각났지만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예능 프로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라면을 먹자!" "다이어트 중이라 안된다" 하며 티격태격하다가 다음날 끓여 먹는 걸로 끝을 냈다. 다행히 치명적인 유혹을 이겨냈다.
가족들은 내가 끓인 라면이 맛있다고 인정한다. 나의 라면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물의 양을 정확히 맞추고 떡국떡과 신 김치, 표고버섯, 고추장, 청양고추, 마늘, 고춧가루를 넣는다. 물이 끓으면 면과 수프를 넣는다. 삼 분이 조금 지나면 면을 건져 내고 불을 끈다. 국물에 계란을 풀고 전기레인지 잔열로 익힌다. 계란 푼 국물을 면에 다시 붓고 맛있게 먹는다. 꼬들꼬들하고 탱탱한 면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하교할 때였다. 우리 집에 가서 라면을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장터 분식집에서 군것질을 하며 두세 시간에 한 대 있는 시골버스를 기다렸다. 늘 먹던 분식집 라면에 식상했는지 새로운 맛을 찾아 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우리 집에 가게 되었다. 지금이야 라면 장인이지만 당시에는 라면을 자주 먹지도 않았고 재래식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의 양도 못 맞추고 연탄불 조절도 실패해서 퉁퉁 불은 라면을 친구들에게 내놓았다.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전기 레인지를 들고 가서 탱탱하고 얼큰한 라면을 끓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