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치명적인 운동
마라톤 열기가 뜨겁다. 코로나 때는 골프에 심취를 하다가 비용 부담으로 테니스로 관심이 바뀌더니 요즘은 달리기가 대세다. 유니폼이나 러닝복을 같이 입은 무리들이 줄을 맞춰 뛰어간다. 마음먹은 대로 힘껏 뛰어갈 수 있는 저들의 젊음이 부럽다. 나는 좋아하던 등산도 숨이 차고 무릎도 걱정되어 둘레길을 거쳐 걷기 운동으로 바꾸었다. 등산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다녀왔지만 집과 가까운 숲길이나 한강변을 매일 걷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아주 먼 옛날 그리스 마라톤 평원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페르시아 전쟁, 동양과 서양이 처음 맞붙었다. 그리스가 이겼다. 그리스 군사 하나가 먼 거리를 뛰어 승전보를 전하고 장렬히 전사를 했다. 그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그가 뛴 거리만큼 달리는 마라톤이란 운동이 생겨났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스는 서양인의 마음의 고향이고 인류의 역사는 서양인의 기준으로 기술되어 왔다. 그러니 페르시아 전쟁도 서양인의 자부심을 한껏 고양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마라톤의 기원은 전 세계인이 굳게 믿는 진실이 되었고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 사람들조차 이를 믿게 되었다. 이란은 마라톤을 금기시하고 있다. 국제 마라톤 경기에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마라톤 경기를 열지 않았다.
대학 축제가 열렸다.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거금을 들여 아이돌이나 유명 가수를 초청할 수 없었다. 일체의 유흥은 반민주라는 이름으로 거부되었다. 운동 경기, 탈춤, 심포지엄, 학사주점 등이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10km 단축 마라톤을 뛰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공책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신청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젊음 하나 믿고 연습도 안 했다. 10km가 그리 먼 거리인지는 처음 알았다. 숨이 캑캑 막히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학교로 되돌아올 때는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한 발자국도 뛰기가 힘들었다. 거친 숨을 쉬며 교문을 들어서는데 큰일이 났다.
마라톤은 축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교문에서부터 결승점까지 학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지막 힘을 내라고 박수와 함성이 요란했다. 그 와중에도 여학우들만 보이고 여학우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저 어디선가 같은 동아리 여자 동기들도 있을 거 같았다. 남은 힘을 쥐어짜서 걷다시피 뛰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교문에서부터 완만히 오르막이다가 결승점인 금잔디 광장은 급경사 길이다. 마라톤이 인체에게 아주 치명적인 운동이란 걸 그때 알았다. 섣부른 도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한 달가량은 절뚝이며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