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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12. 2021

나는 왜 솔직하지 못한가?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1

앞선 글들 '내 인생의 여자들'을 쓰기 위해 내 인생의 지난 연애를 되돌아보며,

공통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운명적이라 생각했던 연애도, 외모에 이끌린 연애도, 정반대 성격과의 연애도, 사내연애도, 결국은 끝이 났다.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눈치 없고, 배려심이 부족한 내가 결국 그 모든 이별의 주인이었고, 대부분이 나로 인한 것들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다음 글의 주제를
'나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로 정했다.

글로 쓰는 자아성찰이자, 자기반성이라고 하면 좋을까?

가끔씩 어렴풋하게 생각만 해왔던 내가 가진 문제들, 성격적 결함에 대해서 최대한 분석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그 원인들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해보는 것.
해결책을 안다 한들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해결책도 모색해보려 하는 것이 이번 글쓰기의 주제가 되겠다.


첫 번째 주제는 나는 왜 솔직하지 못한가?이다.


나는 솔직하지 못 한 사람이다.
거짓말한다의 개념으로의 솔직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거짓말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솔직함이란 나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의 솔직함, 나 스스로에게의 솔직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가? 아니 솔직하지 않은가? (어떤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호하다)

가장 내가 살아온 어린 시절의 환경에 그 이유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GOD의 어머니께 노래의 시작 부분처럼,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물질적 가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가난했다.
결정적 이유는 부모님의 이혼에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90년대 초반, 나의 아버지는 여러 번의 작은 사업에 실패했고, 그나마 남아 있는 돈도 도박에 빠져 전부 날려먹었다.
그 일로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누나와 나 두 명의 자식을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는 주말에도 빠짐없이 일을 해야 했으며 나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정말 흔해빠진 80년대 신파극의 레퍼토리와 같은 이야기가 정확히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가족끼리 그 흔한 놀이동산 한번 놀러 가 본 기억이 없다.
먹을 거를 포함해서 장난감이든 뭐든 어떤 것을 사달라고 조른 기억도 없다.
(과장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이 이야기를 명절 때마다 하시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정말 착했다고 다독이신다. 심지어 지금도 물질적인 것에 대해 욕심이 없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런 행동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엄마와 누나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너무 어린 나이에 철이 드려버렸다.
(물론 반대급부로 지금 더 철이 없이 살고 있긴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놀러 가고 싶어도, 맛있는 게 먹고 싶어도, 장난감이 갖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참은 건지 성격이 원래 그래서 진짜 그런 게 없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 나이 때의 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나는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마도 자연스레 나 자신에 대해 솔직히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엄마를 탓하거나 어린 시절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었고, 그래서 지금 이정도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다만 아쉬움은 조금 남아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외적인 열등감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외모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냥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지금이야 이렇게 생긴 거 어쩌겠어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편해졌지만, 어릴 때는 콤플렉스 수준의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다.
유독 내가 싫어했던 신체부위가 있다. 바로 배꼽. 나는 참외배꼽이다.
내 배꼽의 모양이 남들과 다르단 걸 알게 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도 편하게 웃옷을 벗지 못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누가 놀리지도 않는데 그저 싫었다.  
지금이야 뭐 누가 나에 대해 뭐라 하건 그다지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숨기는 일은 없지만, 여전히 가급적이면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심리가 남아 있긴 하다.



세 번째 요인으로는 아무래도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어도 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가 내 감정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좋은 거는 맞는 것 같은데 정말 좋은 건지, 좋다면 뭐가 어떻게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싫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내 언어적 표현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또 머리와 마음이 각각 다른 감정을 가질 때도 많다.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솔직해지고 싶어도 솔직해질 수가 없는 상황.
어쩌면 이게 가장 심각한 원인일 수도 있다.

내가 솔직하지 못한 데에는 정말 많은 원인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뻔하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꾸 나를 드러내려 연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십수 년간 이렇게 살아오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성격을 바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가장 좋은 연습방법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가끔 일기를 쓰거나, 영화나 책에 대해 짧은 코멘트를 다는 것, 그리고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는 것 외에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특히나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은 더더욱이 처음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와 정말 잘 썼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외에 전문적이라 할 수 있는 분야도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그저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굳이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할 필요도, 유식한 내용들로 가득 채울 필요도 없다. 그저 나의 생각과 마음을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형상화하고, 나를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쉬이 떠오르질 않는다.

혹시라도 좋은 방법이 있다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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