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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21. 2021

푸지에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았다.
'푸지에'
엄청난 주제의식을 담은 것도, 대단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것도 아닌, 그저 몽골의 한 소녀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어, 다큐를 보실 분들은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결말을 알게 되면 다큐를 보는 감동이 반감될 수 있습니다.



세계의 기원을 찾겠다며 세계일주를 하던 일본인 모험가 '세키노'가 몽골의 초원에서 한 어린 소녀를 만나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리지만 당찬 소녀. 푸지에.
이제 고작 6살밖에 되지 않는 푸지에는 능숙하게 말을 타고, 양몰이를 하고 있다.
세키노는 그런 푸지에에 이끌려 좀 더 가까이에서 그녀를 관찰하기로 한다.


푸지에는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말과 양을 키우며 몽골의 전통 집태인 게르에서 살고 있다.
세키노는 그녀의 집에 머물며, 푸지에와 그녀의 가족들과 소소한 정을 나눈다.
처음 푸지에는 외부인인 세키노를 경계하지만, 어느새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얼마의 시간인지 모르는 첫 만남 후, 세키노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푸지에에게 선물해주기로 약속한 미니게임기를 사들고 몽골로 다시 돌아온 건 이듬해 3월.


자신을 반겨줄 거라 기대했지만, 푸지에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 지를 않는다.
그녀를 대신해 푸지에의 삼촌이 세키노를 맞이한다.


얼마 후 밖에 나갔던 할머니가 돌아오고, 환한 미소로 세키노를 맞이해준다.

세키노가 푸지에의 엄마는 어디 갔냐 묻자, 할머니는 세키노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푸지에의 엄마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녀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에 떨어져 다쳤고,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며칠 후부터 등에 통증을 호소했다. 급히 구급차를 불렀지만, 12일 동안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다른 차를 빌려 병원에 갔을 때도 그녀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바로 그다음 날 죽음을 맞이 했다.
치료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의 엄마는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채 죽었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나이는 고작 33살.

사람의 목숨도 돈으로 판단하는 자본주의가 그녀를 죽게 만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키노는 충격에 말을 잊지 못한다.
푸지에도 엄마의 죽음 이후 한동안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삼촌에게 의지해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푸지에.
세키노는 푸지에에게 첫 방문 때 찍었던 가족사진을 전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의 엄마가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푸지에는 학교에 입학한다.
초원에서의 당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학교에서는 그저 7살의 여린 소녀의 모습이다. 마치 이제야 자기가 입어야 할 옷을 입은 것처럼.

그리고 세키노에게도 다시 마음을 열고, 장래희망이 선생님에서 일본어 통역가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푸지에.
세키노는 그런 푸지에를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세키노는 몽골 횡단을 마쳤고, 푸지에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푸지에의 동생이 이제 의젓한 소년으로 자라 세키노를 반겨준다.

하지만 푸지에의 할머니는 더 이상 웃지 못한다.

푸지에의 엄마 영정사진 옆에 어린 푸지에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다


푸지에는 초등학교 졸업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집으로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푸지에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과 푸지에와 그녀의 엄마가 함께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 다큐는 끝이 난다.



푸지에와 그녀의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몽골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다큐는 극적인 상황의 연출 없이도, 큰 울림을 준다.

푸지에.
2006년에 만들어진 이 다큐. 15년이 지난 2021년에 이 다큐를 보는 중간에 내 머리 속에가 가장 많이 든 생각은 2021년의 푸지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세키노를 처음 만난 99년에 6살이었던 푸지에가 지금, 그러니까 그녀의 나이가 28살이 된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본주의화된 몽골 사회에서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정말 그녀가 희망하던 통역사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녀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살았던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다큐의 결말은 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과 함께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정적 속에 눈물만 흐른다.

아... 도대체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푸지에 할머니의 말처럼 푸지에와 엄마는 꼭 인간으로 환생하길 바란다. 그리고 환생한 삶에서는 부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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