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단편소설
"애당초부터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한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다들 과정을 겪게 됩니다. 우연과 실망을 통해서지요."
"두려움 때문에 집에 그냥 눌러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런 현상을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요?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고, 가위눌림 같은 것을 느끼며, 이런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밀폐 공포증이라든가, 고정된 직업을 가짐으로 해서 비롯된 정신 이상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콘트라베이스를 계속 다루면서 생겨난 거지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는 없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물론 저는 사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죠. 제가 그냥 가서 말만 하면 됩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요.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이제까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합법적인 행동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는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자유로운 몸이 되겠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다음엔 무엇을 합니까? 그냥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겁니다…….
절망적이지요. 어차피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
"어쨌든 무슨 일이든지 분명히 일어날 겁니다. 제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겠죠. 제 일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될 겁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라가 저한테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는 저를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의 경력이나 인생길에서 저는 언제나 에피소드로 남게 될 테니까요. 그것이 말하자면 괴성을 지름으로써 얻게 된 효과가 되는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