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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23. 2021

구멍 난 컨버스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워킹홀리데이 시절 얘기가 나온 김에, 그 시절 내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던 일에 대해 써보려 한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 '퍼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처음 나와 친구는 '백패커스'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따지면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 머물렀다.
방은 4인실이었다.

살면서 처음 외국을 나간 것이었기에 인터넷으로 많은 준비를 했고,
가장 평가가 좋은 백팩커스를 선택했다.
아직도 이름이 생각이 난다. '빌라봉 백팩커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 10여분을 걸어 도착한 빌라봉 백팩커스.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고, 우리에게 배정된 방을 들어가는 순간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방안에 2층 침대가 2개 놓여있는 것까진 해했다.
하지만 들어가는 입구부터 바닥에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짐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은 하우스키핑이 없나? 친구와 나는 방을 바꾸기 위해 리셉션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가 짧다.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친구와 나 둘 다 영어로 불만을 표하기에는 영어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방이 더럽다고 방을 바꿔달라고,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 겨우 설명했지만, 그런 이유로 방을 바꿀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투덜대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2층 침대 한쪽에서 자고 있던 외국인 친구 2명이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친구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하며, 방이 더러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예의는 참 바른 친구들이었다. 을 조금 정리하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5일간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데.. 걱정부터 앞섰다.

우리는 일단 짐을 락커에 넣어놓고, 계좌를 만들고, 비자 업무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8월의 추운 겨울. 나와 내 친구의 호주 생활은 첫날부터 굉장히 암울했다.



저녁쯤 돌아오니 그 친구들이 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다.
5일간 같이 써야 하는데 어쩌겠는가?
우리는 짧은 영어였지만, 그 친구들과 반갑게 얘기를 나눴다.

그 친구들의 나이는 나와 비슷한 20대 초반이었고, 유럽인이었다. 호주에 온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 했다.
호주에 온 이유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서핑을 즐기기 위해서 라며,
낮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서핑을 고, 저녁이 되면 바에서 바텐더로 일을 하며 돈을 번다고 했다.
나의 삶과는 비슷한 점을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도 간단히 소개를 했고, 몇 마디 대화를 이어갔지만, 영어가 짧은 나머지 중간중간 어색함이 흘렀다.
자연스럽지 않은 분위기 탓에 나는 시선을 여기저기로 돌리던 중 침대 옆에 있던 그 친구 중 한 명의 컨버스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컨버스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도대체 그 신발을 얼마나 신었기에 컨버스에 구멍이 날 수 있는 건지...
양말에 작은 구멍이 있어도 부끄러울 판에, 신발 밑창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신발을 신고 돌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얼마 후 그 구멍 난 컨버스를 신고 그대로 일을 하러 나갔다.



나는 5일간 그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저런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니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대책 없이 살 수 있지?
미래는 걱정되지도 않나?

처음에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부러웠다.

그때의 내 삶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또 나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기대와 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년이 채 안 되는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영어를 많이 배워야 할 텐데..
아 그리고 학원이 끝나면 알바를 해서 돈도 벌어야 하잖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학교 생활이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자격증도 따야 하고, 졸업하고 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채찍질해서 열심히는 살고 있었지만, 항상 조바심이 나있었고, 불안과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타인의 시선은 상관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순간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물론 그들의 삶이 절대적으로 옳은 방식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만 살고 죽을 것도 아니다. 인생은 길고, 장기적 관점에서는 내 삶의 방식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 친구들과의 5일 동안의 만남은 내 삶의 가치관을 바꾼 중대한 사건임은 틀림없다.

요즘이야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관련된 내용의 책도 많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기 계발을 잘할 수 있는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만 배웠다.

그들을 보면서 내 삶의 초점을 미래에서 현재로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 친구들은 알턱이 없었겠지만, 그 친구들은 내 인생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었다.
그들처럼 생각하고 살아보려 했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나 개인의 성향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삶의 방식이 나에게 미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20년을 넘게 살았기에,

항상 남과 경쟁해야 했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던 과거가 있기에,

나 스스로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그 뒤로 13년이 지났다. 그 친구들의 이름조차 모르니,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알 방도는 전혀 없다.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현실을 즐기며 살고 있을까?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난 그저 그들이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게 그들의 삶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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