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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28. 2021

노래의 주인

약 40분 정도 되는 퇴근길 셔틀버스에 주로 음악을 듣는다.
너무 피곤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때도 있지만,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플레이리스트에 담겨있는 음악을 주로 선곡해서 듣는 편인데, 이날은 듣던 음악들이 조금 지겨웠던 탓에 랜덤으로 음악을 틀었다.



첫 곡부터 익숙한 멜로디가 흐른다.
아... 이 노래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핸드폰 액정을 켜서 노래의 제목을 확인한다.
포맨의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이다.


왠지 헤어진 전 여자 친구가 생각나야 할 것 같은 이 노래를 듣자 군대 시절의 추억이 몰려온다.
이 노래가 나왔던 2006년에 나는 군대에 있었다.


삭막한 군대에서 저녁 8시 반부터 9시까지는 청소시간이자 유일하게 막사 전체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막사내 방송을 담당하는 통신부의 한 선임이 그 당시 이 노래에 꽂혀 있던 탓에 몇 주 동안 청소시간만 되면 이 노래가 군부대 전체에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누구 가는 대걸레를 빨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바닥을 쓸며, 또 다른 누군가는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 목청이 터져라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포맨이 누군지, 신용재라는 가수는 더더욱이 몰랐지만, 그저 그때는 다들 가수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군 시절 추억을 되새기고 있던 찰나,
다음 곡으로 바이브의 '사진을 보다가'가 흘러나온다.
아 이 노래는... 내 대학교 단짝 친구가 교내 가요제 나가서 불렀던 그 노래 아닌가... 그때 이 노래 연습한다고 노래방에가서 이 노래를 대체 몇 번을 들었던가...

외우려 한 적도 없지만 가사를 다 외우고 있다.
한가한 평일 낮에 6천 원만 내면 보너스를 거의 무한대로 넣어줬던 학교 앞 노래방이 생각나고, 시간이 남아있는데 집에 갈 수 없다며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러댔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목젖을 깎는듯한 노력에도 그 친구는 가요제 1차 예선에서부터 광탈했지만, 재밌는 추억은 남겨주었다.

엄청나게 유명한 노래들이 아닌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연이어 나의 추억이 담긴 노래들이 흘러나오니, 마치 어플의 알고리즘이 내 추억 속을 헤집고 있는 느낌이다.



옛날 노래들에 필 받은 김에 코인 노래방에 들렀다.
곡을 고르려고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데 옆방에서 노래 부르는 노랫소리가 내방에까지 들린다.


처음 듣는 노랜데... 좋다... 가사도 잘 안 들리고 잘 부르는 건 아니지만 멜로디가 너무 좋다.
당장이라도 옆방 사람에게 이 노래 제목이 뭐냐 묻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그렇게 그 노래가 뭘까 궁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싱어게인을 다시 보는데..
순간 소름이 쫙 끼친다. 이 노래는... 아까 코노방에서 들었던 그 노래다!

36호 가수 더 레이가 부른 '청소'라는 곡이다.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을까...
또 작은 추억거리 하나가 생겼다.



참 이상하다.
노래는 누가 들어도 같은 곡이다.

그 가수의 목소리도, 그 곡의 멜로디도 가사도 누구에게나 같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누구에게도 같지 않게 들린다.


노래를 들었을 때의 상황이, 그 순간의 감정이, 그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 이 노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 노래는 분명 주인이 있을 것이다. 어느 가수가 그 곡의 주인일 것이고, 그 곡을 작곡한 작곡가 역시 그 곡의 주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노래들은 나의 추억 역시 노래 속에 담겨있기에 노래의 주인이 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참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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