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전에는 누구나 무구한 천국에 있다"
사랑하기 전에는 누구나 무구한 천국에 있다. 그 옷의 솔기조차 아름답고, 좋은 향기만이 그 몸에 가득하다. 죄와 더러움을 모르는 순결한 영혼으로 천상의 구름 위를 노닌다.
사랑하게 되어서야 인간은 먼지투성이의 냄새나고 더러운 진흙밭으로 굴러 떨어진다. 매일 오물을 그 몸에 묻혀가며, 하루하루 늙고 고된 주름들이 그 몸에 패여만 간다.
사랑을 시작하며 인간은 그의 부모가 받쳐주고 있던 꽃가마에서 내려와 자신의 발로 대지를 걷게 된 것이다. 그의 부모가 그들의 천사를 위해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가리고자 펼쳤던 은형의 마법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이에게서 무화된다. 더러워지고 부패되어 가더라도, 부모의 어깨 위에 올려져 나날이 짐의 무게만을 더해가는 거짓의 천국에서 내려와, 인간의 부모가 걷던 그 대지를 같이 걷겠다고 선택한 인간의 뜻이다.
이 뜻 앞에 인간에게 올려진 모든 짐의 무게는 산산이 무화된다. 사랑을 이제 막 시작한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그의 뜻이 이토록 아름다운 까닭이다. 천국 대신에 택한 그 뜻이기에 무량하게 깊다.
인간의 자식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뜻은 천국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며, 스스로 그 증거가 된다. 인간이 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거하는 이 뜻을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무구한 천국이 아니라, 인간의 자식과 함께 걷는 이 숲길이며, 이 유정한 시간이다. 깊어서 기쁜 것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인간의 자식으로 함께 새기고 있는 이 시간이라 해야 하리라. 이것은 나이테만큼 깊고, 산새들의 노래만큼 기쁘다.
누구도 천사가 아닐 때 인간은 서로의 짐이 아니다. 서로의 기쁨이다. 나는 천사가 아닌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실수와 무지로 잘못 그어진 흠집에 새가 둥지를 틀게 하고, 꽃이 자라게 하는 큰 나무의 가슴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의 더러움이 다른 이를 위한 여유와 쉼이 되게 하는 인간의 자식의 정겨움을 그 얼마나 사랑하는가.
한 시절의 죄와 과오로 더러워진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그것은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을 덜어주고자 했던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었다고. 당신이 인간의 자식으로 이곳에 내려온 그 깊은 뜻이었다고. 숲길을 함께 걸으며 무심한듯 정다웁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시간을 나는 분명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