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찍는 카메라"
사람들은 서로에게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듣지도 않을 거면서.
들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자신은 주관이 뚜렷하고 중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심야에 무작위로 아무 10개의 전화번호에 "아아, 들리나요. 이곳은 은하계의 작은 별. 이 목소리가 닿고 있을까요? 거기에도 사람 있나요?"라고 문자를 보내면, 반드시 이 주관이 뚜렷하고 중심이 있는 이들이 응답할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서 이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주관이 뚜렷하고 중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는 이들일수록 휘둘리고 싶어한다. 어떤 초유의 사태에 휘말리기를 바란다. 영화같은 일이 자기에게 생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무척이나 지루하고 외로운 까닭이다.
지루하고 외로운 이들은 상대를 통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별이 되기를 꿈꾼다. 그들은 까탈스러운 배우의 입장을 갖는다. 고고하게 앉아 상대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며 각본을 평가한다. 그러다가 그들의 뇌가 자극을 얻으면 엉덩이를 쇼파에서 떼고는 열정적으로 각본에 개입하여 자신이 상대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형태로 각색을 시도하곤 한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따라한다. 아이들에게는 각색도 필요없다. 그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을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명배우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따라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은 그 일이 그들 자신을 지루하고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눈치챌 때다. 남을 따라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지루함과 외로움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명배우였기에 배우를 관두는 일이 이들에게는 쉽다. 배우를 관두고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밤의 공터에 남아서 영화를 본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자신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 그것을 따라해서 자기 자신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좋아보이는 자신의 모습 같은 것이 보이고, 이들은 이제 또 그것을 따라한다. 대체 무엇을 연기하는지도 모르게 혼재되어 이들은 까탈스러운 배우가 되어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뇌가 자극될 새로운 자신의 모습 같은 것을 남의 이야기 속에서 보게 되면, 또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가지려고 한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다. 공터의 밤은 달빛조차 지루하고 또 외롭기 그지없다.
이야기가 이들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다고 섣불리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외롭고 지루해서 이들은 이야기를 소비하지만, 이야기를 소비하기에 이들은 외롭고 지루하다. 외롭고 지루한 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기에 외롭고 지루해진다.
이것은 카메라의 상태다. 영화의 주인공을 꿈꾼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별의 순간을 기다리는 카메라의 상태로 항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에게 인격이 있다면 외롭고 또 지루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별을 찍어줄 카메라를 꿈꾸던 이 자신이 카메라가 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당연한 일이다. 결여된 것만이 강박처럼 실현된다. 카메라의 심리적 상태가 되는 것도 필연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야는 뷰파인더가 되어 좁아진다. 인간은 주변시를 잃게 된다. 뚜렷하고 중심이 있는 것처럼 보지만, 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뷰파인더를 통해 자기 자신만은 절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적 시야는 주변시와 같다. 눈앞의 현상을 보면서도 자기 자신을 함께 본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를 둘러싼 주위에 더 섬세할수록, 그 자신은 더욱 발견된다. 소리는 더 노골적으로 그렇게 기능한다. 들려오는 소리는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타격한다. 듣고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한다.
그러니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루함과 외로움은 단지 누군가가 우리의 주위에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나아가 타인도 없고 자신도 없는 그 자리에 카메라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면, 나는 그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다. 적어도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좀처럼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청해 듣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들으려 한다. 그들의 마음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마음으로 보고자 한다. 이것은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보려는 것이다. 별에 초점을 맞추면 별빛이 흐려진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별빛이다. 사람들이 내고 있는 광채다. 별빛도 나를 타격한다. 사람들의 광채 속에서만 나는 내 자신이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행복할 방식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