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생활자의 수기 #14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

by 깨닫는마음씨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 이 감각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쓰고, 또 그런 감각을 얻은 척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감각을 얻기 위해서나 얻은 척하기 위해서나 하고 있는 일은 동일하다. 그들은 삶과 거래를 하고 있다.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는 일이 가능했던 성공적인 거래자일수록 시간은 더 많이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붓다에게 7년이었던 것이 예수에게 40일이었던 것은 역량의 차이가 결코 아닐 것이다. 다만 붓다가 가진 풍요의 소재들이 워낙 많아 버리는 데 더 시간이 걸린 것뿐이다. 키도 작고 못생긴 독신의 막노동꾼 사생아에게 뭐 그리 버릴 것이 많았겠는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만 버리면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제는 자기가 도달했다는 그 인식의 착각이며, 그러한 착각으로 만들어낸 자기권위다. 그 앞의 것들을 버리는 시간보다 이것 하나를 버리는 데 더 곱절의 시간이 걸린다. 뭘 좀 아는 사람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작문하는 일을 통해 타인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확보한 자원 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느끼는 감각을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는 그 감각이라고 경험하고 있다면 속절없는 시간의 낭비다.


나는 이런 이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자기의 글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모으지 못할 때, 미소짓던 그 입으로 절망적인 탄식을 토해낸다. 자기에게 호감을 갖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없다면 그들은 각종의 자위기구를 동원해 과잉된 욕구의 좌절이 낳은 불감증을 해소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으르렁거리며 피를 토하는 야수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느껴지지 않는 성기를 붙잡고 울어댄다. 이러한 이들에게 삶은 근본적으로 처절한 투쟁이다. 자신이 쟁취해야 하는 생존게임이며, 그것이 곧 삶에 대한 거래방식이다.


물론 이렇게 사는 일이 심대하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러한 이들은 자신의 희망사항을 곧잘 노래하곤 한다. 껌을 씹어도 소리가 안나는 사람을 찾듯이, 성취를 이루는 일에 애씀이 없는 사람의 모습을 기원한다. 애씀없이 행복하자는 말은 이 기도문의 통속적인 형태다. 표면적으로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게끔 만들어진 기도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분명하게 성취와 관련되어 있다. 성취해야만 행복한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기에게는 성취되어야만 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삶이 투쟁의 양상을 띤 거래라면 가장 노력한 자가 가장 성취해야 하는 일이 정당하다. 최소 이것은 부당거래가 아니다. 그러나 삶을 근본적으로 생존게임으로 전제하면서도, 자기만은 노력하지 않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부당거래의 마법이다. 마법은 분열된 인간이 만들어낸다. 분열되어 생겨난 그 허공의 간극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어둡고 끈적한 숨결이 바로 마법이다. 나는 이 악취를 견딜 수 없다. 자기 자신을 향한 정욕이 지금 썩어가고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인가? 나는 그렇다고 쓸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이라서가 아니라 근본이 없어서 나르시시스트라고도 쓸 것이다.


자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자기애를 만들어낸다. 자기애는 자기의 보상물이다. 그러나 나는 허탈하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라는 것을 또 하나의 성취물로 가정하고 있던 것이다. 얻지 못한 자기라는 가상의 성취물을 자기애라는 또 다른 가상의 성취물로 보상하려던 것이다. 이들은 대체 얼마나 삶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던 것인가. 삶에서 실제적으로 받은 것 대신에, 이들은 자기가 성취해야 하는 가상의 소재들을 끝없이 만들어내 자기보상을 이루려는 일만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없는 것은 버릴 수도 없다. 없기 때문에 계속 얻어야만 한다고 추구하고 있으니, 버린다는 발상은 애초에 성립되기도 어렵다.


자기 자신이 애씀없는 힘을 집행함으로써 계속 나라는 것을 더 많이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성취해가는 것이 삶이라고 혹자들은 생각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다양한 나의 경험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수집해가는 일이 좋다는 말로도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인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삶은 마음이 만들어준 나라는 이벤트다."


나는 이 말에 아주 감동받았다. 여기에서 나는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삶의 이름이다. 마음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가장 성대한 축제의 이름이다. 거저 받은 그 이름이다. 그러니 준 것이 다시 가져갈 것이다. 버린다고 하지만 실은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여름밤에 쏘아진 불꽃을 나는 버릴 수 없다. 온 곳으로 돌아간 것이며, 그렇게 한시절의 아름다움이었고, 영원한 추억일 것이다.


바로 이것을 조건없이 거저 받았다. 삶은 거래하고 있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 조건적으로 거래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며, 삶은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다. 나는 모든 의무교육의 교과서들에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해도 되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반드시 제일 앞장에 이 말이 기재되었으면 좋겠다.


"삶과 거래하지 말 것."


거래하지 않는 것 안에는 만남이 있다. 어떤 매개적 조건없이 바로 만나는 것이다.


마음이 나를 만나면 그게 바로 삶이다. 마음이 살면 그게 바로 나다. 내가 마음을 만들지 않았다. 마음이 자신이 만든 나를 살고자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마음이 소망하던 가장 아름다운 축제, 바로 이 삶이 그런 것이라고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이렇게 말하라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런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느낀다. 또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쩌면 영영 할 수 없게 되어도,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키작고 못생긴 독신의 상담노동자라서가 아니다. 나는 나를 얻은 적도 없으며 잃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또는 내가 나를 성취해야 한다는, 또는 내가 어렵사리 얻은 보다 진정한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그 모든 거래가 애초 성립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나구나."라면서 하루하루 나를 수집하며 살고 있지 않고, 또 "이것이 나구나."라면서 하루하루 나를 버리며 살고 있지 않다. 편의상 나라고 쓰고 있지만, 나는 쓰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것에는 더 성취하든 덜 성취하든 그 모든 거래의 조건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만을 실감한다. 나를 갖지 못해서 또는 나를 버리지 못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오직 지금 현재의 이것이 최상의 상태라는 것을 정말로 그렇다고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무(無)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나무라고 말하고 있다.


나무처럼 잠깐 앉아보면 진짜로 지금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 나무는 지금 가장 좋은 최상의 상태에 있다. 누구나 이런 말을 한다. 실제로 앉는 이가 별로 없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이 가장 큰 감동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싶은 이는 누구나 여기에서 시작해야 하리라. 인간은 자신이 시작한 자리가 가장 최상의 자리였다는 것을 이해할 때,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은 인간의 감각을 회복한다. 글을 쓰다가 다 지울 수 있다. 쓰지 않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최상의 상태로 늘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쓰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최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러다가 또 쓰게도 된다. 쓰지 않으며 살아있어도 좋고, 쓰면서 살아있어도 좋다.


마음은 자신이 만든 이 모든 것을 나라는 이름의 축제로 이처럼 둘러봐간다. 좋은 것들이 그 자리에 좋은 것으로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마음쓰며 길을 나서는 고양이의 순례처럼, 마음은 자신을 써서 이 온전함의 이벤트를 상시 펼친다. 일상의 삶이란 실은 우주적 이벤트인 것이다. 분명하게도, 아무 조건없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다며 마음이 나를 통해 이 모든 것에 말을 걸고 다니는 그 시간이 바로 삶이다. 나는 이렇게 쓰고는,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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