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째 날"
이제 반 정도 왔을까. 외장은 도색작업과 조명설치, 그리고 플랜테리어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 간판과 현관문을 다는 일도 있다.
간판에 대해서는 자주 까먹게 된다. 북카페와 상담소, 두 개의 상호가 달릴 것이지만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실은 간판을 달지 않아도 상관없다고까지 느낀다. 한다면 구석에 조그맣게 페인트로 칠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현재 드러난 형상만으로도 이미 이 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뭘 하는 곳인지를 묻고 가시는 분들은 정말 많다. 그 존재감이 선명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튀는 것과 그 존재감이 선명한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튀는 것은 조화로움을 해치며, 존재감이 선명한 것은 조화로움 속에서 그렇게 존재한다.
그 일이 바로 디자인이다.
나는 디자이너 형님과 여러 차례 오붓한 데이트를 했다. 함께 거리를 거닐고 대화를 하며, 이 거리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차라리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의 자녀를 함께 키워가는 부모였으리라. 우리가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방향성은 단 하나였다.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세상을 사랑하는 이는 세상과 잘 어울린다. 조화로움은 사랑의 결과다.
이곳에 공간을 구하기 전에도 나는 가로수가 늘어진 이 거리를 사랑했다. 활기와 고요함이 공존하는 거리다. 그러한 거리의 느낌과 더욱 어울리고 싶다. 우리의 공간도 활기와 고요함으로 가득찰 수 있기를 바란다.
역으로 나는 이 거리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의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금 기억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일상의 아름다운 빛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다들 얼마나 선명하고도 조화로운 방식으로 그처럼 신비하게 존재하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일이 되리라.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아름다운 신비로 볼 수 있는 감수성을 회복하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심리상담의 가장 궁극적인 차원이라고 믿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열째 날, 나는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특정행위만이 아닌, 공간 밖에서 공간 자체의 존재감으로 나누어질 바로 그것을 상담이라고 재정의한 것이다.
이 공간 자체가 상담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힘차다.
나무로 된 예쁜 문이 현관에 달릴 것이다.
간판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문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그러나 완성되고 난 뒤 누구도 문을 특징적으로 의식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늘 열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존재감이 선명한 것들은 공기처럼 일상의 풍경 속으로 묻어들어간다. 일상이 된다.
이 거리의 일상이 되고 싶다. 그 안에는 영롱한 빛을 가득히 담고 있는. 나는 열째 날, 그러한 것을 소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