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3

"스물셋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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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루가 깔렸다. 평상의 위아래가 같은 색이지만 빛에 따라 다른 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부상판과 잘 연결되는 느낌이다.


여름에는 마루가 깔린 바닥에 시원하게 발을 담글 작은 수반들을 놓을까도 싶고, 겨울에는 4인용 코타츠를 두어 개 놓을 것이다.


평상 자체에도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열고 들어가서 숨을 수 있는 장소가 두 군데 있다. 열어놓고서 다리만 그 아래 내려놓고 앉아도 되는 공간이다. 물리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상상력을 즐길 뿐인 요소다.


침대 밑의 괴물처럼, 평상 아래에도 괴물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만화책을 보다가 홀로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침대 밑에서 살짝 나오는 그런 괴물 말이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발달한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아주 잘 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침대 밑의 괴물 같은 것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 이미 침대 밑은 내 공룡인형들로 사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맡에는 성경책과 십자가, 토큰으로 만든 영환도사가 쓰던 엽전검, 그리고 레고 기사들이 놓여 영적 수호의 임무를 맡고 있었고, 방의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이드들과 마크로스의 발키리들은 사각없는 포화망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가까이 두었던 것은 7살짜리 아이의 몸집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 큰 브론토사우루스 인형이었다. 하늘색의 몸에 동그랗고 귀여운 노란색의 눈이 달려 있었고, 입은 미세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바느질이 되어 있었다. 떠올려보면 내가 있는 곳에는 늘 브론토사우루스가 있었던 것만 같다. 특히나 비오는 날 혼자 집에 있거나, TV에서 하는 전설의 고향을 볼 때면 그 존재감을 더욱 가까이 느끼곤 했다. 나는 늘 브론토사우루스를 안고 있거나 베고 잠들곤 했다. 나에게는 엄마였을 것이다.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아파토사우루스로 통합되면서, 나는 실제의 브론토사우루스 인형도 함께 잃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내 옆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줄도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 사라짐을 불현듯 눈치채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브론토사우르스가 고유한 속으로서의 그 이름을 다시 찾았을 무렵이다. 나도 내 인형을 다시 찾고 싶지만 이미 이 세상에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아이들은 침대 아래 다들 이러한 상상의 괴물 한 마리쯤은 두고 있다.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상냥함으로 그것들은 만들어지며 충직하게 아이들의 유년기를 지켜간다. 바로 그랬다는 기억조차 사라지지만, 어느 날인가 우연찮게 그 기억이 돌아오게 될 때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지켜준 것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를 실감하며 어떤 압도적인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평상의 위아래로 가득하게 공룡인형을 두고 싶다. 문득 나는 그러한 소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베개처럼 베고 만화책을 봐도 좋을 것이고, 팔을 걸쳐 앉아도 좋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꼭 안고서 따듯한 차를 마셔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마루가 깔렸으니, 돌아올 것들이 돌아와도 되는 시간이다.


나는 무수한 공룡인형들이 서교동 골목길을 따라 줄을 지어 방주로 하나둘 들어오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눈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고 친숙하고 따듯한 어떤 공기가, 끝없는 미소로 피어나는 어떤 추량할 수 없는 무한대의 선의 같은 것이 이곳을 가득 채운다. 나는 아마도 지금 죽어도 좋으리라. 그렇게 마루의 꿈과 노닐던 스물셋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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