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째 날"
의도했던 방향성 속에서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색이 나왔다. 머스터드색이라고 말하면 쉽겠지만 그 표현으로는 결코 실제의 이 색감을 충분히 묘사해낼 수 없다.
빛을 담고 있는 색이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특히 질 무렵의 가장 따듯한 색을 가진 태양빛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간이 되면 정말로 황홀해진다. 같은 것이 만나 둘도 없다고 반갑게 포옹을 하듯 그 색감이 가장 피어난다.
가장 왕성한 빛의 기운을 담고 있는 색이다. 분명하다. 나는 기억해냈다. 이 색을 예전에 어디서 보았는가를.
막 추수를 앞두고 있는 벼들이 노을지는 하늘 아래 신나서 춤을 추고 있을 때의 바로 그 색이다.
빛을 가득 담아 그 빛으로 자란 생명이 무르익어 이제 빛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감사인사를 전한다. 바로 그러한 환희의 색이다.
나는 분명 저녁 무렵에 이 거리를 걷다가 몇 번 울지도 모른다. 아니 울기 위해 공간의 밖으로 나와 멀찍이서 물끄러미 빛의 축제를 바라볼 것이다. 아련할 것이다. 어떤 약속을 기억해낼 것이다.
인간은 빛으로 태어나서, 빛으로 살다가, 빛이 된다는 아주 오래되고 영원한 약속을 가슴속에 떠올릴 것이다.
빛, 인간은 빛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이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자신다운 핵심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는 까닭이리라.
내외부의 전기공사를 마무리하고 조명을 설치했다.
빛을 담고 있는 색의 공간에 다시 빛이 더해진다. 빚이 아니기에 아무리 더해져도 무리가 없다. 오히려 더욱 좋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빛을 더해가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진실한 소망이다. 그 만남의 소망 자체가 사람이 담고 있는 빛이다. 사람의 색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신이 빛나고 싶다고 소망한다. 실은 그의 주위를 환히 밝히는 빛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빛의 천성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인정해야 한다. 그래 나는 빛이다, 빛을 가득 담고 빛으로 자라 이제 빛이 된 생명이다. 그 색(色)이다.
그러면 가장 어둡던 어떤 순간에도 자신에게 빛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어둠 속에서 떠올라 하나둘 다가온다. 단 한 번도 버려진 적이 없고, 단 하루도 우주의 미아였던 적이 없다.
빛이 함께 있었다.
가슴 안에 있었다.
눈물로, 웃음으로, 서러움으로, 분노로, 기쁨으로, 또 외로움으로 빛이 있었고, 그렇게 모든 것으로 빛이 함께 있었다.
하나의 색으로는 말할 수 없다. 여러 빛이 키워온 하나의 삶은 오묘한 색이다. 그래서 하나의 일생은 신비롭다. 빛을 담고 있는 색이다.
그리고 이제 환히 비추려 한다.
그도 빛이었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은 사람을 만나가고, 그 가슴의 빛을 밝힌다.
우리도 오늘 점등했다. 스물넷째 날, 사람을 향한 아주 오래되고 영원한 약속을 거리에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