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5

"스물다섯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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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이제 인조식물들을 씻기 시작한다. 덩굴식물과 고사리류가 제일 많다. 총 10박스에서 하루에 3박스씩만 풀어도 양이 많아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이다. 없으면 오히려 고민은 적다. 잘 버리는 일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식물은 거들 뿐, 강백호처럼 되뇌인다.


그러나 나는 강백호가 아니지 않은가. 씻는 김에 문득 함께 씻긴 1:1 스케일의 콤피들을 본다. 무성한 풀 사이로 놓인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리고 행복해보인다. 이번에는 방주에 타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까. 공룡은 두 번 멸종하지 않는다.


나는 실시간으로 창발하는 중이다. 슐라이히와 파포의 동물피규어들을 각 쌍으로 영입하고 싶어진다. 새끼동물이 있다면 그렇게 가족 단위로 구성하고 싶다. 사자, 얼룩말, 늑대, 판다, 돌고래, 기린, 사슴, 코끼리, 여우, 사막여우, 북극곰 등과, 그리고 아마도 보노보노도, 가득한 풀들 사이로, 또 책들 사이로 자신의 자리를 갖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 것인가.


요소가 많다는 것은 어쩌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요소들에 의해 자신의 자리가 소외될 때뿐이다. 나에게 출현한 이해는 이제 그러하다. 그렇다면 역으로 식물들을 최대치로 활용함으로써 더 내 자리 같이 느껴지는 아늑한 세부공간들을 구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쪽으로 마음이 쓰인다.


잘 쓰는 일은 잘 버리는 일과도 실은 동일하다. 자연스럽게 힘이 운용되는 방식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많은 것을 억지로 비축만 해두는 것은 무리한 힘이 드는 일이다. 쓰지도 않을 근육을 유지하려는 일이나, 쓰지도 않을 지식정보를 축적하려는 일이 분명 그럴 것이다.


심리라고 쓰지만 결국에는 에너지의 문제다. 마음을 잘 쓰지 못하고 다만 사유재산처럼 비축하려고만 할 때 가장 에너지가 소모된다. 특정한 형상으로 마음을 유지하려는 일은 커다란 에너지의 낭비다. 유지하는 그 일 외에는 다른 곳에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져서 늘 똑같은 모습으로만 시간의 뒤편에 남겨진다.


나는 이런 현상을 시간의 미아가 된다고 자주 표현하곤 한다.


자신의 시간을 잃은 것이고, 자신의 자리를 잃은 것이다.


있는 것을 억지로 계속 있게 하거나, 또는 억지로 그만 있게 하거나, 문제는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


있는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다시 발견하는 일, 유일한 문제는 아마도 그것이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는 결코 고정되지 않았다. 새롭게 계속 발견되어 간다. 나는 여기에 대해 분명한 예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징검다리를 건널 때 우리 자신이 현재 밟고 있는 징검돌은 아주 의미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이제 바로 앞의 다른 징검돌로 이동해간다. 우리의 진로와 함께 의미도 이동해간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징검돌들도 원래 그것을 밟고 있던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새롭게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나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다 의미가 있었다고.


아주 많은 경우 이것은 사실이면서, 또한 사실로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많은 경우 이것은 희망이다.


사실 위에 앉아 희망을 바라보며 간다.


방주의 여행이 그러할 것이며, 무성한 수풀 사이로 내다본 인생이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이렇게 살게 되는 것이리라.


정말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자리에 있던 트리케라톱스들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만 같았다. 스물다섯째의 의미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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