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6

"스물여섯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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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님을 좋아한다. 셀비지 원단이 좋다. 뻣뻣한 새제품을 구입해서 그 냄새를 맡으며 볼을 대보는 일이 좋다.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과도 같다. 입기보다는 자꾸만 감상하고도 싶어진다. 셀비지 데님팬츠는 분명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러한 완벽의 사물을 망가뜨리는 일을 나는 더욱 좋아한다. 땀이 배고 오염이 생기고 주름이 잡혀가면서 그것은 이제 나에게 딱 맞는 내 바지가 된다.


사막을 지나고 협곡을 가로질러 바다를 건나가는 내 여행의 경험들이 내 바지에는 농축되어 있다. 내가 나의 것이라고 부르게 될 것은 결국 내 인생길의 여행을 함께해온 정직한 동행자인 것이다.


어떤 것의 완벽함이 망가진다는 것은 그것이 분명 나와 함께였다는 증거다.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의 완벽함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너와 끝까지 함께야."


그러고 싶어 내 자신의 완벽도 망가지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 자유가 더욱 피어날 것이다.


완벽보다 더 근사한 것은 서로가 완벽함을 무너뜨리고 동행하는 만남이다.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서로 자유롭다.


스물여섯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슬슬 망가뜨리는 일을 시작할 때가 왔다.


우리가 서로에게 길들여질 시간이다. 그럼으로써 더 자유로워질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는 처음에 완벽하다고 구상한 그림들이 조금씩 엇나간다. 나는 정말로 이러한 상황들을 즐긴다.


단풍나무, 나아가서는 벚나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남천이 들어왔다. 내친 김에 썬라이트를 잘라 울타리를 치기로 했다. 80년대 연탄광의 느낌처럼 뭔가 궁색한데, 그 궁색함이 전면으로 뻔뻔하게 드러나 있어서 대단히 유쾌한 기분이다. 더는 궁색함이 아니다. 사물을 아끼며 끝까지 소중하게 내 것으로 쓰려는 어떤 선량함이다.


평상에도 더 정갈한 감각으로 식물을 배치하려 했지만, 잡초같은 느낌의 화분을 그냥 넣었다. 3만 원인데 이 정도 볼륨감이라니 아주 마음에 든다. 평상 밑의 괴물도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잡초 뒤에 공간이 있다. 은신해서 만화책을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이 말은 개인의 심리적 공간이 안전하게 열릴 물리적 거리감이 충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마음이 열리는 일에 필요한 것은 경계다. 경계를 종종 무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상정하는 어떠한 이상적 완벽성이다. 인싸여야 하고, 말을 잘해야 하며, 또 무엇보다 INFP면 안된다는 종류의 얘기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커뮤증(의사소통장애)이 행복한 공간이고 싶다. 그게 정말로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을 신뢰한다.


너무 어렵게 말하고 있는가. 쉽게 말하면, 통속적인 세간에서 보기로 좀 망가진 사람들이 수풀 뒤에서 수줍고도 기쁘게 웃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최고의 개체들만이 선별되어 방주에 타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생존력이 약하고 보편적인 먹이사슬 속에서의 적응이 좀 힘든 커뮤증 생명체들이 과거 방주로 찾아왔다고 믿는다. 이곳도 그랬으면 좋겠다.


실은 함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되었던 가장 섬세한 이들이 그 소망대로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며, 동일한 소망대로 잘 망가뜨리고 있던 스물여섯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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