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9

"스물아홉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IMG_9221.jpg?type=w1600



인조식물을 전깃줄과 레일에 열심히 걸다가 지금 이게 뭔가 싶었다.


자원과 에너지도 많이 썼는데 쓴 것에 상응하게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소위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현상이다. 이대로 계속하면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대책없이 소비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쉼표를 찍어야 한다.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일단 멈춰본다.


가만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심증이 들었다. 무엇이 지금 어색한가? 언제나 질문에 답이 있다. 대부분은 질문 자체가 실은 답이다.


문제는 지금 어색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심증을 확인하기 위해 플랜테리어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심증을 확증시켜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잎은 줄기에서 자라며 전깃줄에서 자라지 않는다. 근본적인 어색함을 넘기고 지나가면 그 어색함을 방어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요소를 더하게 되며, 결국에는 매우 힘을 들인 부자연스러움으로 모든 것을 다 뒤덮으려 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기억해냈다. 이것은 옷을 못입는 이들이 옷을 입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들은 몸에 맞지 않거나 톤이 맞지 않는 옷을 입어 생겨난 어색함을 없애고자 더 많은 패션의 요소들을 더한다. 더하면 더할수록 왠지 촌스러워져서 종국에는 명품으로 전신을 갑옷처럼 무장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돈을 많이 쓴 것처럼 보이니 누군가는 그 재력에 반드시 환호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옷을 입는 현실이 아니라, 옷 뒤에 사람이 숨어버린 현실이다. 일종의 열등감이 작용하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생긴 열등감은 아니다. 자신이 옷을 못입는다는 사실 위에 일어난 현실을 회피하고자 해서 생긴 열등감이다.


다르게 묘사하자면 이는 거짓말쟁이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다. 한 번 해놓은 거짓말 위에 자신의 영광을 위치시키면 그 다음에는 계속 거짓말만을 더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거짓말로 세상을 다 뒤덮는 일에 성공하면 자신이 이기는 것이라고 거짓말쟁이는 생각한다. 자신의 촌스러움을 오히려 모범적 표준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돈을 가득 써서 전깃줄 위를 다 식물로 뒤덮어버리면 전깃줄에서 식물이 자라난다는 부자연스러움은 사라질 것이라고 궁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이 바로 멈추어야 할 때다.


자연스러움을 잃거나 또는 자연스러움에 거스르려 할 때 자원과 에너지는 속절없이 낭비된다. 힘들게 전진은 하지만 실은 안가느니만 못한 길이다. 근본적으로 막힌 길이다.


나는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배워가는 이다.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에 관해 삶의 모든 것으로 배워간다. 이 사실 위에서 살아가지 않을 때 종국에는 다 부자연스러워진다.


오히려 어떤 기술이 없고 무지하더라도, 삶의 자연스러움을 배우려는 의도 속에만 있다면 경쾌하고 활력있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릴 것이다.


식물의 요소가 채워지지 않은 원점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막힌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방향을 잘못 든 갈림길로 잽싸게 돌아나오는 것이다.


나는 경쾌하고 활력있게 자라고 싶다. 나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간의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싶은가?


그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주 명료한 대답을 얻었다.


내일의 햇살이 조금 먼저 찾아와 눈앞을 환하게 만들어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스물아홉째 날은 쉼표를 찍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내일이 몹시 기다려지던 그런 날이었다. 식물은 레일이 아닌 내일을 향해서 자란다. 나도 그럴 것이다.




IMG_9222.jpg?type=w1600


작가의 이전글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