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째 날"
매력이 아니다.
이 공간의 마력을 카메라로 담아내지를 못해 아쉬울 뿐이다. 덩굴과 식물들이 빛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어떤 입체적 신비감은 말로 묘사하기에도 마냥 부족하다.
이전 공간인 카페 어웨이크닝에서도, 홍대에서 인테리어 제일 잘해놓은 공간 같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이벤트 회사에서 연인들의 프로포즈 공간으로도 많이 이용들 해주셨다.
나는 조금 신나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제는 거의 마포구 수위권도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망상해본다.
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네가 망원동, 성산동, 서교동, 연남동, 연희동 등지라 어여쁜 공간들이 들고 나는 모습들은 자연스레 관찰되곤 한다.
나는 망원동 이이알티 같은 공간을 아주 예쁘다고 느낀다. 거기 길 건너편의 안나꽃마을도 좋아한다. 여사장님과는 오랜 단골이었다. 조금 골목으로 들어가 있는 카페 나하는 음식도 취향이며 내부도 아주 편안하고 좋다. 무엇보다 예전 중학교 절친이 살던 공간에 입점해있어서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 거기 건너편의 스튜디오 호랑이는 지금 공간을 얻기 전에 고민하던 최종후보였다. 결국에는 공간의 크기 때문에 현재 공간을 택했지만, 스튜디오 호랑이는 분명 망원동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거기도 예전 친구가 살던 집이었다.
망리단길을 소개하거나 망원동에 얽힌 추억을 회고하려는 것은 딱히 아니다. 물론 내 가슴의 영원한 고향은 망원동이다. 비만 오면 잠기던 예전의 그 동네를 나는 정말 사랑한다. 사촌동생과 함께 올라탄 스티로폼배를 작은 아버지가 허리까지 오는 물을 헤치며 밀어주시던 기억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가족들을 하나둘 떠나보낸 곳도 망원동이지만, 거리에는 그 기억들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연안약국, 엄마손슈퍼, 배우리학원, 재경오락실(스트리트파이터2 버튼을 이상하게 배치해놓기로 유명했다) 등을 향해 오밀조밀하게 나있는 골목길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또는 끌려가던 발걸음들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성락교회를 지나 지금의 도쿄빙수쪽으로 향하는 길은 내 청춘의 습작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계절들을 오가며 무수하게 울면서 걸은 길이다. 왜 그리도 늘 아프고 분하기만 했는지, 그것은 길의 마력이었을까.
그러나 오히려 거꾸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이 있어 나는 살 수 있었다.
길이 내 아픔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다 받아주었던 까닭이다.
나는 사람의 눈물을 많이 머금은 것들이 마력을 띠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력으로 사람을 지켜준다.
내가 망원동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망원동이 나를 살게 해준 것이리라.
망원동 애기를 길게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바로 그러한 망원동에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을 지금의 이 공간에 이식하고 싶다고 하는 말들이다.
동화에 나오는 숲속 마녀의 집 같은 느낌으로 상담실 문을 꾸몄고 공간 전체에 덩굴이 덮이도록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레 탄성이 나올 정도의 어떤 박력이 분명 있다.
그러나 마녀의 진짜 마력은 사람의 슬픔을 가득 담아내고 있는, 그래서 사람의 눈물을 따듯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눈빛에서 나올 것이다.
기세좋게 자라나는 덩굴의 박력도 결국 눈물이 키운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려깊은 이해력이 증대되는 것도 눈물로 말미암아 뇌 속의 덩굴이 자라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시냅스는 눈물로 연결된다고 나는 믿고 싶다.
어떻든 덩굴은 이제 충분히 왕성해졌다. 당신을 향해 뻗칠 가지들도 무성하다. 천수관음의 손 같다. 스티로폼배 위의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던 작은 아버지의 손을 똑 닮았다.
서른두째 날, 그렇게 서교동에서 망원동의 마력을 소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