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째 날"
막힌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두고, 되는 일부터 한다. 정확히는 되는 일만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막힌 것이 풀려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모든 것이 다 되어가게 된다.
내가 삶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분명 이것이다. 이것이 정말 사실임을 문제로 경험되는 상황들에서 매순간 확인해간다. 배움이 점점 무르익어 체화된다.
인본주의 상담에서 말하는 '되어감(becoming)'의 원리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사람은 덩굴처럼 자라난다. 막혔을 때 그것을 억지로 뚫기 위해 버티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후 유연하게 돌아가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가 위치한 공간을 다 점유하는 일에 성공하고야 마는 것이 사람의 강함이다.
이러한 사람은 존재의 속성을 대변한다. 존재가 고정된 명사와 같은 실체가 아니라 동사인 것은 존재가 내포한 절대적 강함의 표현이다. 끝없이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장면에 따라 필요한 형상으로 변해갈 수 있기에 존재는 강하다.
물론 이것은 존재가 예의바르게 눈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추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은 아부하지 않으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덩굴식물도 아양떨지 않는다. 존재가 유연한 것은 다만 존재가 정직하다는 의미다. 정확한 자신의 필요로만 행한다.
존재는 존재의 증진에만 관심이 있으며, 싸움과 갈등으로는 자기의 존재가 증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창조하는 예술가는 대립해야 할 대상이 필요하지 않다. 대극을 필요로 하는 것은 창조의 감수성으로부터 멀어진 이들이다. 서로 싸우는 뜨거운 기운 속에서만 자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위함이다.
일을 물흐르듯이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잠정적으로 싸우려는 투쟁의 기운을 가진 이들을 쉬게 하면 된다. 제발 일하지 말고 옆에서 만화책이나 보며 낮잠이나 자라고 한 뒤, 일을 투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만이 마음편히 일하면 된다. 그러면 창조성이 발현된다. 생산성도 자연스레 뒤따른다.
오늘 하루만도 아주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흐름이 다시 회복되었다. 경쾌하다. 덩굴들의 기세가 좋다. 가지를 무럭무럭 뻗어나간다. 순식간에 이 공간을 거의 다 점유하는 일에 성공했다.
가지가 튼튼하게 뻗은 뒤 이제 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꽃이 필 날도 머지 않았다.
서른한째 날, 시원하게 덩굴이 뻗어가는 재미에, 존재가 증진되는 그 맛에, 지난 한 달간의 피로도 간 곳이 없다.
나는 이런 것을 대범하게 사는 감각으로 분명 체험한다. 망설이지 않고 굵직굵직하게 쭉쭉 내지르는 웅대함이다. 거침없이 생기찬 존재를 누구도 막을 도리가 없다.
이런 감각으로 만든 공간에서 바로 이 존재의 감각을 방문객들이 함께 느끼며 그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러려고 만들기 시작한 공간이었다. 막힌 것의 회복과 함께 기억도 개통되었다. 한 달이 지나 이제 서른한째 날이 된 오늘, 다시 첫날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