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43

"마흔셋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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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꽃이 피는 상담소 maum이기도 하다. 생화 화분을 가득 사왔다. 꽃이 피는 애들을 중심으로.


상담실 테이블에 앉아 바라보면 사진의 풍경이 나온다. 고개를 조금 올리면 천장도 녹색빛으로 가득하다. 식물원에 들어가 상담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이 난다.


이제 이 상담실 공간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다. 더할 것이 없다. 100%로 충족해있다.


떠올려보면 우리는 언제나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괴로워했다.


내 자신과 주변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과 같은 그 무엇이 되기를 꿈꾸고 있어 많은 것이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무엇이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기는 했던 것일까.


환상, 나는 그것이 100%의 환상이었다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환상은 충족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과 주변을 충족시켜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내 주변에 충족될 수 없었을 때만 그런 생각을 품었다.


마치 자신이 연인에게 만족하지 못하면서 그 연인을 100%로 만족시킬 완벽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던 것과도 같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내 자신과 주변을 만족시켜줄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자신이 주변에 만족하는 그 일일 뿐이었다. 그러면 100%의 충족은 일어난다. 나는 이것을 참된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원래는 버리려고 했던 것들로, 또 이미 버려진 것들로 상담실을 꾸몄다. 테이블도 길거리에서 주워와 다시 칠한 것이다.


그러나 버릴까 말까 하는 고민 속에서 결국 다시 살리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런 대단한 선택의 능력 따위는 있을리가 만무하다.


오직 통째로 버리려는 그 감각으로 움직일 때야 재생의 씨앗은 태동한다.


이것은 결국 핵심적으로는 자신이 기존에 해온 생각과 계획과 판단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어떤 환상들을 100%로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환상에 가리워져 있던 주변의 것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현재를 100%로 충족시켜줄 자원으로 눈에 다시 들어온다. 스스로 재구성의 빛을 발하며, 자원들의 균형있는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현재 주변에 있던 것들이 현실을 100%로 채우게 되며, 내 자신 또한 자연스럽게 주변의 것들에 100%로 충족된다.


내가 지금 '주변'이라고 부르고 있던 것을 '마음'이라고 바꾸어 읽으면 이것은 상담의 과정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마음의 회복이라고 부르는 현실은, 마음이 막 떠밀려 버려지려고 했던 벼랑 끝에서 생환한 현실과 같다.


마음이 돌아왔다.


나는 마음을 충족시켜주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이 마음에 내가 충족해있다.


그러면 마음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꽃이 핀다.


꽃은 자신을 통째로 다 버리고, 통째로 다 찾아온 그 결과다.


똑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현재에 잘 조화되도록 완전히 변화되어 돌아왔다. 변화하는 마음이야말로 지속가능성의 힘이다.


바로 이 힘을 사람들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가는 일을 돕기 위해 상담소는 기능하는 것이리라. 무엇이 되러 가는 곳이 아니다. 돌아올 마음을 마중하러 가는 곳이다.


마흔셋째 날, 그러한 그리움이 마침내는 꽃으로 피어날 장소를 마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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